[새만금은 지금①] ‘혈세 낭비’ 논란의 새만금…행정부실로 수백억 예산 손실
‘군산항 흙 퍼내랴, 새만금 흙 메우랴’…줄줄 새는 ‘나랏돈’ 정권마다 바뀌는 사업 내용…이해관계자들의 ‘로비’ 탓? 농어촌공사, 준설토 ‘품질불량’…운동본부 “혈세 낭비 너무해”
2023-06-12 박영주 기자
최근 군산항 제2준설토투기장을 짓는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내년 본 사업 진행을 앞두고 있다. 당장 5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큰 규모의 사업이지만, 시민단체 등은 혈세를 이중으로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군산항 준설토를 새만금 매립토로 활용할 수 있음에도 행정당국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파이낸셜리뷰는 제2준설토투기장을 둘러싼 갈등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비용‧환경 문제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한때는 단군 이래 최대 토목사업이라 주목받던 새만금 사업이 서서히 관심에서 멀어지며 ‘조용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군산항 제2준설토투기장’ 건립사업에 대해 혈세를 이중으로 낭비하는 비상식적 사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행정당국이 군산항에서 발생하는 퇴적토를 매년 수백억원을 들여 퍼내는 한편, 새만금에 필요한 흙은 군산항의 퇴적토를 활용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또다시 수백억원의 비용을 들여 충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군산항살리기운동본부 등은 군산항 퇴적토를 새만금에 매립시 비용, 효율성 등 측면에서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해당 내용을 포함한 상생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군산항준설토를 새만금매립토로 활용하는 안(案)이 받아들여졌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당국의 입장은 뒤집혔다. 때문에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새만금 사업이 국익을 고려하지 않고, ‘정권 입김’에 따라 마구잡이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군산항 흙 퍼내랴, 새만금 흙 메우랴’…줄줄 새는 ‘나랏돈’
지난달 24일 군산항살리기운동본부는 성명서를 통해 5000억원 규모의 ‘군산항 제2준설토투기장 건설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군산항준설토를 새만금매립토로 적극 활용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약 4㎞ 떨어져 서로 마주보며 각각 준설과 매립을 필요로 하는 국가사업인 군산항 준설과 새만금 매립이 이해할 수 없는 사유로 서로 외면하면서, 군산항은 5000억원 규모의 자체 제2준설토투기장 건설로, 새만금은 환경재앙이 현실이 되어가는 내부준설로,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며 질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강 하구에 있는 군산항 해역은 매년 500만㎥가 넘는 퇴적토가 쌓인다. 퇴적토를 제때 퍼내지 않으면 배가 드나들 수 없어 군산항은 항구로써의 기능을 하기 어렵다. 또한 군산항 전역에는 이미 토사가 1억㎥ 이상 퇴적돼 있어 이에 대한 조속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군산항에서 퍼 올린 퇴적토를 제1준설토 투기장인 금란도 투기장 일대에 쌓아왔고, 그 결과 여의도의 70% 규모에 달하는 인공섬 ‘금란도(金卵島)’가 만들어졌다. 군산해수청은 그동안 3차례 둑을 쌓아 금란도에 준설토 투기를 해왔고, 투기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또다시 제2준설토투기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군산항살리기운동본부는 제2준설토투기장 건설에 반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군산항 준설토를 새만금 매립토로 활용하면 굳이 많은 예산을 들여 제2준설토투기장을 건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한국농어촌공사는 준설토가 매립토로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지역 주민들과 전문가들은 군산항준설토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군산 일대 곳곳에서 매립토로 활용돼왔던 만큼 한국농어촌공사의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반면 한국농어촌공사는 준설토가 매립토로 적합하지 않다며, 일부 준설토 사용을 해왔지만 공사기간이 길어지고 연약지반 처리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농어촌공사 새만금산업단지 사업단 관계자는 “기존에 새만금산업단지 매립토로 군장항로 준설토를 사용하는 것을 합의를 해서 사업시점부터 현재까지 준설토 사용을 일부 했다”면서도 “그런데 공사기간도 늘어지고 연약지반 처리도 어려워져서 당초 계획에서 일부 양을 감하고 다른쪽에서 토지를 확보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 말했다. 매립을 위한 흙은 새만금 내측의 호소(湖沼) 밑바닥에서 퍼올리고 있다.정권마다 바뀌는 사업 내용…이해관계자들의 ‘로비’ 탓?
해당 사업 진행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대목은 정권마다 바뀌는 행정당국의 판단이다. 우선 MB정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관련 사업에 대해 직접 관계부처 장관들을 소집해 회의를 진행했고, MB정부 인수위원회에서는 군산항 준설토를 새만금 매립토로 공급하라는 권고와 함께 발주를 목전에 둔 군산항 제2준설토투기장 사업을 철회시킨 바 있다. 이와 같은 사업 기조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지며 14년 동안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2021년 10월 문재인 정부 말기에 제2준설토투기장 사업이 예타사업으로 선정됐다. 사업타당성(BCR)이 급증했다는 이유였다. 이후 제2준설토투기장 사업은 2022년 8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며 5000억원 규모의 국비를 확보했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당시 해당 내용들은 청와대 수석 등을 통해 전달됐지만, 비공개 회의 진행 과정에서 유야무야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미 추진되던 사업을 무산에 따른 지역민심 동요 등 영향을 고려했지만, 결국 사업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보다 많이 반영된 결과였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지역구 의원들이나 지자체장 후보자들은 모두 상생안 내용을 듣고 ‘맞는 말이다’, ‘적극 반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당선 이후에는 이렇다 할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침묵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하기도 했다.농어촌공사, 준설토 ‘품질불량’…운동본부 “혈세 낭비 너무해”
군산항살리기운동본부는 “농어촌공사 등에서는 준설토의 품질 불량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수십년간 군산항준설토로 조성된 산업단지 등 각종 생활용지에서 살아가는 군산시민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명이 거짓으로 들릴 뿐”이라 지적했다. 신원식 한국환경준설학회 교수도 “일반적으로는 준설토를 매립토로 사용하는 것은 어렵다. 준설토가 깨끗한 상태라면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오염돼있다면 중금속 용출 등 2차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그동안 매립토로 사용을 했었다면 오염에 대한 염려가 없고 비용도 싸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매립하면 제일 좋다”고 밝혔다. 또한 건축업계 한 관계자는 “군산항 퇴적토가 미세모래 성분인 만큼 구조용 골재로는 부적합하더라도 바닥기초제 대체용으로는 사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4년까지만 하더라도 군산지역 해양수산청은 “준설해야 할 퇴적토를 자원으로 활용한다면 예산 절약 효과가 기대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군산항살리기운동본부는 “제2준설토투기장 건설사업은 이미 2008년 토건정부라 비난받았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례로 근시안적인 행정이라 지적 받았다”며 “준설사업은 끝이 존재하지 않는 사업이다. 제2준설토투기장은 사용연한이 30년으로 한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아무리 나랏돈이 눈먼 돈 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여태까지 보아온 당국의 답변내용이나 태도로 보아 시정요구 단계는 지났다”면서, 제2준설토투기장 건설 관계자들에 대한 고발조치와 감사원 감사 요청 등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