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이웅평 귀순 결심의 트리거 ‘삼양라면’

2024-06-13     박영주 기자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1983년 2월25일 북한의 한 전투기가 갑자기 편대를 이탈해 우리나라 영공으로 진입했다. 서울에 공급경보가 울리고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상황, 해당 전투기는 날개를 흔들어 귀순의 뜻을 밝혔고 수원비행장에 착륙한 전투기에서 북한 공군 이웅평(李雄平) 대위가 내렸다. 이웅평 대위가 왜 귀순을 결정하게 됐는지. 인터뷰 과정에서 나온 한 일화는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됐다. 그 중심에 ‘삼양라면’이 있었다.
이웅평의
이웅평 대위가 남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무렵, 그가 해안가를 산책하다 발견한 삼양라면 봉지 뒷면에는 ‘변질‧훼손된 물품은 본사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교환‧환불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통상적 문구였지만 당시 이웅평 대위는 ‘남조선은 이런 작은 것에도 인민들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데, 지상락원 북조선은 이게 무슨 꼴인가’라는 의문을 품었고, 결국 귀순을 결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웅평 대위의 이같은 스토리는 영화 ‘헌트’에서 까메오로 출연한 황정민 배우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북한군 파일럿 ‘리 중좌’로 등장해 실감난 연기를 보이기도 했다. 짧은 등장이었지만 강렬한 씬이었다. 
영화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평범하게 위대하게

삼양라면을 둘러싼 스토리는 또 있다. 우리나라 라면의 첫 시작을 알린 삼양라면의 탄생 비화다.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라면의 첫 시작이 ‘삼양라면’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1960년 초 삼양식품 창업자인 故전중윤 명예회장은 남대문시장에서 미군이 버린 음식을 끓인 ‘꿀꿀이죽’을 사먹으려고 몰린 서민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라면을 국내에 도입했다.  보험회사를 운영하던 전 명예회장은 일본 묘조식품(현 닛신식품)의 기술을 무상원조 받아 라면을 생산해냈고, 적자가 날 것이라는 임직원 반대에도 싼 가격에 라면을 판매했다.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식량난을 해결하겠다는 창업주의 강한 의지가 있었다.  재밌는 부분은 처음부터 라면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가격이 쌌지만, 상대적으로 밥에 익숙한 1960년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라면은 ‘낯선’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쌀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혼‧분식 장려운동’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간편하게 끓일 수 있는 라면은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은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시장을 주름 잡았다. 삼양식품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DNA에 ‘라면’을 각인시켜줬지만, 아쉽게도 삼양라면의 아성은 계속되지 않았다. 1980년대 경쟁사인 농심이 너구리‧안성탕면‧짜파게티 등 새로운 메뉴들을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삼양라면’을 전면에 내세운 삼양식품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89년 ‘우지파동’으로 삼양라면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삼양라면이 면을 튀길 때 공업용 우지(소기름)를 사용한다는 잘못된 보도가 나온 이후, 삼양식품은 유래 없는 위기에 봉착했다. 법정공방 끝에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당시 우지파동으로 삼양라면은 오랫동안 판매 중지됐다가 1994년 들어 재출시 됐다.
초창기

불닭볶음면, 매운맛으로 세계 정복…제2의 전성기

삼양라면이 라면의 원조로서 지금의 삼양식품을 만든 개국공신이라면, 매운맛의 대표주자 ‘불닭볶음면’은 삼양식품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준 일등공신이다. 2012년 4월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내수가 주력이었던 삼양식품을 수출 주력으로 깜짝 탈바꿈시켰다.  창업주 故전중윤 명예회장의 장남 전인장 회장의 부인인 김정수 부회장은 2011년 딸과 서울 명동 데이트 중 매운찜닭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매운볶음면에 대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눈물까지 핑 돌지만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매운맛. 라면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은 딱 들어맞았다.  약 1년여의 개발기간을 거쳐 탄생한 불닭볶음면은 처음엔 소수의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특유의 중독성 있는 맛은 금새 입소문을 탔고, 2016년 전후로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불닭볶음면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글로벌적인 인기를 누렸다.  불닭볶음면의 인기 배경에는 중독성 있는 매운맛 외에도 다른 라면과의 콜라보가 쉽다는 점이 있었다. 실제로 삼양식품은 다양한 맛을 원하는 소비자들 인기에 부응하고자 다양한 라인업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며 수십개의 제품을 선보였다.  라인업만 놓고 보면 △까르보 불닭볶음면 △짜장 불닭볶음면 △쫄볶이 불닭볶음면 △핵불닭볶음면 △불닭볶음탕면 △할라피뇨치즈 불닭볶음면 △로제 불닭볶음면 △쿨불닭비빔면 △미트스파게티 불닭볶음면 등으로, 수출전용 제품 △커리 불닭볶음면 △마라 불닭볶음면 △콘불닭볶음면 △김치 불닭볶음면 △야키소바 불닭볶음면 까지 포함하면 종류가 더 많아진다.  
왼쪽은

日 무상원조로 탄생한 라면…이젠 일본이 베끼네?

불닭 시리즈가 인기를 끌다보니 일본에서 제품을 모방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는데, 여기에도 눈여겨볼만한 스토리가 숨어있다.  일본 최대 라면회사인 닛신식품은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비슷한 라면 신제품을 내놓았다가 논란의 중심에 섰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닛신식품 홀딩스 산하에 있는 묘조식품이 삼양라면의 탄생에 큰 영향을 준 회사라는 점이다.  앞서 삼양라면 스토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창업주 故전중윤 명예회장이 국내에 라면을 처음 도입했을 당시 일본 묘조식품(현 닛신)의 기술을 무상원조 받아 삼양라면이 탄생했다. 당시 묘조식품은 닛신식품과 경쟁사였지만, 2006년부터 묘조식품은 닛신식품 홀딩스 산하로 들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아 탄생한 라면업체의 제품을 일본이 베끼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지난 2021년 삼양식품은 자사 대표제품 삼양라면과 불닭볶음면을 전면에 내세워 뮤지컬 콘셉트 광고를 선보인 바 있다.  삼양라면을 주제로 한 ‘평범하게 위대하게’ 영상은 큰 인기를 끌었고, 다소 지루한 브랜드 이미지를 완전히 새롭게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잘 만든 애니메이션 광고 시리즈를 통해 삼양식품은 대한민국 광고 대상을 휩쓸며 젊은 소비자들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1961년 창업 이후 벌써 60년 이상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삼양식품. 사측은 앞으로도 소비자들과의 지속적인 소통과 사회공헌 등을 통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입장이다.
​삼양라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