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6월 14일 체 게바라 탄생

2024-06-14     어기선 기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28년 6월 14일은 ‘체 게바라’로 불리는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가 탄생한 날이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의사이면서 공산주의 혁명가이고 정치인이다. 하지만 정작 서구권에서 높이 평가받았던 인물이다. 다만 최근 들어서 그의 작혹성 등으로 인해 그에 따른 비판적 평가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체 게바라는 애칭인데 체(Che)는 아르헨티나로 대거 유입해 온 알프스 산맥 지방 출신 이탈리아 사람들이 주로 불렀던 발음으로 ‘나’라는 뜻을 갖고 있다. 쿠바 혁명 주도자라고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 나고 자란 아르헨티나 사람이다.

부유한 집안 출신

체 게바라 즉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는 아버지가 큰 병원 원장이었다. 따라서 경제적 부족함이 없이 자랐다. 아울러 스페인 내전 패배로 망명한 공화국 정부 인물들과 만나면서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넓히기 시작했다. 원래 의사를 꿈꿨기 때문에 의사의 길을 가게 됐다. 하지만 남미 대륙을 여행하면서 빈부격차로 인해 살아가는 빈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에 혁명가로 투신하게 됐다. 과테말라 혁명에 참여했지만 실패로 끝나면서 멕시코로 탈출했고, 이 과정에서 쿠바에 혁명의 불길을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혁명은 성공, 경제는 폭망

혁명군은 시에라 마에스트라를 기점으로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을 하면서 민중들의 지지를 받아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959년 1월 3일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면서 독재자 바티스타를 쿠바에서 몰아내면서 쿠바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 직후 반(反)제국주의, 반식민주의 외교활동을 하게 됐고, 이후 쿠바 국립은행 총재로 발탁되면서 쿠바를 산업화하려는 계획의 책임자가 됐다. 그러나 경제는 폭망했다. 사실 경제 전문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은행 총재가 됐다는 것은 경제 정책의 실패를 예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에 미국 경제봉쇄가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쿠바 경제는 가라앉게 됐다. 또한 1990년대 소련을 비롯해서 동구권 국가들이 붕괴되면서 쿠바 역시 붕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체 게바라는 1965년 쿠바를 등지게 된다. 이후 콩고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실패를 했고, 결국 볼리비아에서 공산혁명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볼리비아 농민들이 체 게바라에 대한 적대시하면서 결국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생포된다. 그리고 처형 당했다.

할리우드가 만든 혁명가

체 게바라는 혁명가로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치가로서는 실패한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한 곳에 오래 붙어 있지 않고 혁명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체 게바라에게는 혁명가가 직업이 된 셈이다. 이런 이유로 혁명가로서의 신화적인 인물로 떠오르게 만들게 했다. 이것은 결국 할리우드에서 상품화하기 충분한 소재가 됐다. 제국주의는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와 싸우는 제3세계 민족해방 투쟁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족해방을 부르짖는 소위 NL계 인사들에게는 체 게바라가 우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체 게바라의 잔혹성 등에 대한 비판과 혁명가이지만 사실상 민중을 어떤 식으로 먹여살릴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