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소금
2024-06-16 어기선 기자
수렵에서 농경사회로
인간이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전환되면서 식량의 저장 개념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소금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고대 유럽에서 페니키아가 해상무역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도 소금이다. 소금 전쟁으로 유명한 것은 13세기 이탈리아에서 발생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국가 형태였다. 그런데 소금세를 거뒀고, 소금 독점권을 두고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지중해 소금 독점권을 두고 전쟁을 치렀고, 베네치아가 승리를 하면서 100년간 경제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베네치아는 르네상스를 주도하는 도시국가가 됐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서도 소금전쟁이 일어났다. 잘츠부르크는 1816년까지 독립 주권을 가진 도시국가였다. 이에 카톨릭 주교가 통치했고, 소금광산을 발판으로 잘츠부르크를 건설했다. 그런데 17세기 소금광산들의 소금 판매가를 대폭 낮춰서 소금시장을 지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소금전쟁으로 이어졌다.프랑스 대혁명에 영향 준 소금
소금은 프랑스 대혁명의 하나의 원인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그것은 국가가 소금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소금세를 부과해서 재정을 충당해왔다. 문제는 프랑스 왕실이 잦은 전쟁 등으로 인해 재정이 악화되자 소금세율을 더욱 높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귀족들에게는 소금세를 면제해주고, 일반 백성들에게 과도하게 부과했다. 왕이 정한 가격대로 모든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의무적으로 소금을 사야했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소금세도 부과하게 됐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면서 1790년 소금세가 폐지했지만 1805년 나폴레옹이 군비 마련을 위해 다시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