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코와 손잡은 현대건설, 정주영의 주베일항 공사가 뭐기에...
2024-06-27 이창원 기자
무조건 해보자
사우디아라비아는 당시 오일머니가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에 따른 미래 먹거리를 생각하게 되면서 주베일 산업항 건설이 필요했다. 이에 최저 입찰제로 공모를 했고,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의 자격에 제한을 두게 됐다. 이에 일본의 최대 건설회사도 자격요건을 채울 수 없어 입찰 참여를 포기해야 했다. 당시 공사 입찰금액이 9억 6천만 달러이었고, 이는 당시 우리나라 연 예산 25%에 해당했다. 이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적극 지원에 나서면서 현대건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입찰에 참여한 회사는 미국을 비롯한 독일, 일본, 스웨덴, 캐나다, 호주에 이르는 9개국 31개 세계적인 건설회사이다. 경쟁국들은 우리나라에 대한 폄하와 방해공작을 지속했고, 사우디아라비아 건설청 역시 현대건설을 입찰자격이 없는 나라로 지목하면서 정문 출입을 막았다. 궁여지책으로 국왕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정문에서 출입이 거절되자 항의를 하게 됐고, 마침 국왕이 이를 목격하게 됐다. 이에 국왕이 사정을 듣고 입찰자격을 통보받았다. 입찰 당시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주영 당시 사장은 특유을 말을 했다. 바로 “이봐,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이었다.어려웠던 공사, 하지만 정주영은 쉽게 풀어내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어려우면서도 복잡한 공사였다. 당시 우리나라 건설업은 바다 위에서 공사를 하는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1차 공사로 깊이 10m인 바다를 길이 8km, 폭 2km 만큼 메운 후 그 위에 항구와 기타 시설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2차로는 깊이 30m의 바다에 30만 톤급 유조선 4대를 동시에 댈 수 있는 3.6km 길이의 거대한 시설을 바다 위에 세워야 했다. 이를 위해 무게 40톤, 길이 18m, 세로 20m, 높이 36m 크기의 철근 구조물이 필요했다. 철근 구조물을 만약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서 만들려고 한다면 공장을 다시 세워야 했고, 그에 따라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여야 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 공장에서 만들어서 주베일 산업항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면 결국 다른 나라에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현대건설이 가져갈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현대건설은 구조물을 만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해당 구조물을 현대중공업에서 만들어서 인도양을 거쳐 주베일까지 35일 동안 운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외신에서는 “무모한 일”이라면서 현대건설을 비난했지만 결국 구조물을 운송하는 것이 성공했고, 해당 공정은 세계 건설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바닥을 종 모양으로 판 뒤 철근과 콘크리트를 넣고, 거기에 철근 구조물을 세우는 공법도 세계 처음으로 시도됐다. 결국 2년 반 동안 진행된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20세기 최대 건설공사’라 불리면서 1979년 2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주베일 산업항 건설 성공은
주베일 산업항 공사 성공은 우리나라 1980년대 중동건설 붐을 만들었다. 현대건설이 라스 알가르 주택항공사, 쿠웨이트 슈아이바항 확장 공사, 두바이 발전소 건설 등 중동에서 대형공사를 잇달아 맡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대건설은 1975년 중동 진출 후 1979년까지 51억 6천40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고, 다른 건설업체의 중동 건설시장 진출의 밑거름이 됐으며, 오늘날 현대건설을 반석 위에 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