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프랑스 알제리계 소년 총격, 프랑스와 알제리의 어두운 역사
2024-07-03 어기선 기자
바르바리 해적으로 유럽 위협
알제리는 고대 카르타고가 성장하면서 로마를 위협할 수준이 됐다.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위협할 정도였고, 로마는 결국 카르타고를 멸망시켰다. 그러면서 속주로 전락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화 되면서 알제리 역시 기독교로 번영을 누렸다. 그리고 서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쳐들어 왔고, 7세기 말 아랍인들이 쳐들어오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이후 알제리 지역에는 바르바리 해적의 근거지가 됐다. 그리고 1516년 오스만 제국의 번국이 되면서 바르바리 해적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노략질을 일삼으면서 유럽 국가를 더욱 위협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최악의 해적으로 바르바리 해적이라고 부를 정도였고, 바르바리 해적에 의해 노예가 된 백인들이 수백만명이 될 정도였다.미국에 의해 바르바리 해적 격파
그러다가 1801년과 1815년에 미국이 트리폴리를 해군으로 공격하여 초토화시키면서 해적들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1830년대부터 프랑스가 바르바리 해적 토벌 명분으로 알제리를 공격했고, 점령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령 알제리가 되면서 프랑스 식민제국 통치가 시작됐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공격할 수 있었던 이유도 오스만 제국이 쇠퇴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은 식민 지배 기간 내내 계속 이어지면서 내륙의 사하라 사만으로 진출했고, 모로코 왕국이나, 베르베르인, 투아레그인 등의 내륙의 유목민들과 싸워가면서 1936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국경으로 확정된다. 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를 제2 프랑스로 만들어 영구 지배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강력한 프랑스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면서 알제리 내에서 프랑스에 부역하는 세력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피지배계층이었던 아랍계의 불만이 커지면서 1954년부터 민족해방전선을 중심으로 알제리 전쟁을 일으켰고, 1962년 독립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에 부역했던 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하거나 프랑스 본토로 도망가야 했다. 문제는 이들 상당수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에 정착해서 좀도둑이나 막노동일에 종사하며 빈민으로 정착했다고 한다. 아울러 기독교로 강제 개종을 해야 하는 등의 수난을 겪어야 햇다. 프랑스 내부에서 알제리계를 탐탁치 않게 여기게 된 이유도 이런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