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원진레이온, 그리고 삼성과 포스코
원진레이온 닮은 꼴…고개 숙인 삼성, 외면하는 포스코 포스코 최정우, 소통‧사회공헌 일성에도 죽어나가는 직원들
2023-07-05 박영주 기자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중략)…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80년대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민중가요 ‘사계’의 가사 일부다. 당시 노동자들은 밤낮없이, 그야말로 청춘이 저물도록 ‘미싱’이라 불리는 재봉틀을 돌려가며 일을 했다.잘도 돌아가는 미싱,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지던 시기에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최악의 산업재해가 있었다. 바로 ‘원진레이온 참사’다.
과거 박정희 정부는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친일파 1호로 불리는 화신그룹 총수 박흥식의 주도 하에 일본 동양레이온으로부터 노후화된 중고기계를 들여왔다. 1964년 들여온 이 중고기계를 바탕으로 1966년 경기도 미금시에 ‘흥한화섬’이라는 회사가 만들어졌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공장 기공식에 참석할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본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원진산업이 이를 인수해 이름이 원진레이온으로 바뀌었다. 한때 직원수 3000여명에 달했던 대기업 원진레이온은 꿈의 직장이었다. 하지만 직원들과 동네 주민들을 중심으로 죽음의 릴레이가 시작되면서 꿈의 직장은 ‘공포의 직장’이 돼버렸다. 이유도 없이 주민들이 픽픽 쓰러지고 10명이 넘는 이들이 목을 매 자살하는가 하면 직원들 역시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다 팔다리 마비, 언어장애, 정신착란 증상을 보였다. 최종적으로 사망자만 127명, 중독환자는 1000명이 넘었다.원진레이온 참사의 원인은 ‘이황화탄소 중독’이었다.
레이온이라 불리는 인견사는 양복안감이나 속옷에 쓰이는 실인데, 이를 생산하는 과정에 이황화탄소가 사용됐다. 중독되면 흥분‧불안 등 정신착란에 두통‧뇌경색‧구토‧경련‧사지마비 증상은 물론 간과 신장의 손상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심하면 사망으로까지 이어진다. 원진레이온은 설립초기부터 노후된 기기에서 발생한 불순물인 이황화탄소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환기설비를 설치했음에도 직원 대부분이 호흡하는 과정에서 중독되고 말았다. 1981년 첫 중독환자가 나왔지만,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관심을 갖지 않았고 1986년 당시 노동부는 원진레이온을 2만5000시간 무재해 달성으로 표창하기까지 했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는 회사에 무재해 표창이라니 말도 안된다는 울분이 쏟아졌다. 사건의 변곡점이 된 것은 ‘88올림픽’이었다. 당시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 가족 협의회(이하 원가협)는 올림픽 성화가 원진레이온 회사 근처를 지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성화 봉송로를 막아 전세계에 원진레이온 참사를 알리려했고, 이를 알아챈 정부가 그제서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29명에 불과했던 직업병 인정 근로자는 1990년에는 111명, 1993년에는 257명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직업병 인정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도 많았다. 정부에서는 원진레이온 회사를 폐쇄하는 형태로 빠르게 사태를 봉합하려 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제야운동가들과 시민들의 계속된 투쟁으로 비영리공익법인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설립됐고 구리시 인창동에 ‘원진녹색병원’이 만들어졌다. 원진레이온 참사는 최악의 산업재해였지만 직업병 인정, 재단 설립, 민간전문병원 및 연구소 설립까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원진레이온 닮은 꼴…고개 숙인 삼성, 외면하는 포스코
포스코 최정우, 소통‧사회공헌 일성에도 죽어나가는 직원들
피해자 입장에서는 부족하다 느낄 수 있지만 삼성이 고개를 숙이고 대책 마련에 나선 것과 달리, 포스코에서는 여전히 피해 호소를 외면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포스코건설, 포항제철, 광양제철 등 3곳에서 5년 동안 4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데다가 포스코 광양제철소와 포스코 포항제철소 인근 주민들을 중심으로 대기오염 피해 호소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 최정우 회장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