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새마을금고 사태, 뱅크런 그리고 예금자 보호

2024-07-06     어기선 기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새마을금고 연체율 상승으로 인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가 ‘범정부 대응단’을 구성해 위기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은 6일 새마을금고 건전성 관련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새마을금고 회원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 안심하시기 바란다”며 “범정부 위기대응단을 구성해 새마을금고 예수금 동향을 밀착 모니터링하고 위험 요인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한창섭 행안부 차관은 “최근 새마을금고의 연체율이 상승함에 따라 새마을금고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크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새마을금고의 연체율은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면서 국민을 안심시켰다. 아울러 “다른 금융기관과 마찬가지로 예금자별 5000만 원 이하 예·적금은 새마을금고법에 따라 예금자 보호가 된다”며 “일부 금고가 인근 금고와 합병되더라도 고객의 모든 예금은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예금자 보호란

예금자 보호란 은행이 망하면 정부 혹은 정부에서 지정한 위탁기관에서 은행 대신 돈을 주는 것을 말한다. 원금보장과는 개념이 다르다. ‘예금자 보호’라는 명칭이지만 뱅크런을 방지하기 위해 나온 제도이다. 뱅크런은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한 은행에서 뱅크런이 발생하면 다른 은행에서도 뱅크런이 발생한다. 이것을 막기 위한 제도가 ‘예금자 보호’이다. 뱅크런의 시초는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 당시 ‘금(金)’이 화폐 기능을 했지만 무거웠고, 보관이 불편했다. 이에 금을 녹여 만든 화폐 즉 금화를 제조했고, 화폐로 통용했다. 하지만 금화 역시 보관하거나 휴대하기 불편했다. 이에 금 소유자들은 자신의 금화를 보관하는 방법으로 금세공업자의 금고를 이용했다. 금세공업자는 커다랗고 튼튼한 금고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금세공업자는 금화 주인에게 ‘보관증’을 써줬다. 그리고 금화 주인이 언제든지 보관증을 가져오면 금화를 줬다. 금화 주인은 점차 금화 대신 보관증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금보다 가볍고 휴대하기 편했으며, 금세공업자에게 가져다주면 언제든지 금화로 바꿔주기 때문에 금 보관증이 화폐 역할을 했다. 그런데 금세공업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맡긴 금화를 한꺼번에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금세공업자는 자신에게 맡겨둔 금화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기 시작했다.

금세공업자가 대출을...

대출만 잘 회수되면 금화 주인 몰래 금세공업자는 막대한 돈을 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금화 주인이 금세공업자가 갑자기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수상하게 여겼고, 금세공업자를 추궁하자 금세공업자는 이자의 일부를 나눠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금화 주인도 단순히 금고에 금화를 넣는 것보다 대출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허락했다. 그러던 중 어느날부터 금세공업자는 금화 보관증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금화 주인이 10%의 금만 찾는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금고의 금보다 10배나 많은 보관증을 발행하게 됐다. 그러면서 지급준비율이 탄생했다. 자신의 금화로 돈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금화 주인들이 금세공업자에게 가서 자신의 금을 달라고 요구했고, 자신의 금화를 모두 가져가버렸다. 이것이 뱅크런의 시초이다. 뱅크런으로 금세공업자가 위기를 맞이하게 되자 영국 왕실이 금세공업자를 찾아가 가상의 돈을 만들어 대출 영업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허락했다. 그러면서 금세공업자는 은행가가 됐고, 영국 왕실이 보증한 은행 즉 잉글랜드 은행이 설립됐다.

예금자 보호는 일본에서

은행이 이런 식으로 탄생을 하면서 자본주의 한 가운데 은행이 있게 됐다. 그리고 예금자 보호가 일본에서 시작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은 일본에게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연합군의 일원이 됐다. 그러면서 열강들은 일본으로부터 물건을 수입하게 됐고, 그에 따라 일본에는 엄청난 버블경제가 발생했다. 그런데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전쟁 특수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버블경제가 붕괴됐다. 이때 수많은 은행과 증권사들이 파산 위기에 놓이게 됐다. 소위 뱅크런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각 은행과 중앙정부 예산에서 긴급 기금을 마련하고, 일본 백성들에게 은행 파산 시 자신의 예금을 1만엔 한도로 금으로 보상해주는 예금자 보호제를 1920년부터 1922년까지 임시적으로 시행했다. 현대식 상설 예금자 보호는 대공황기인 1933년 플랭클린 D. 루즈벨트가 뱅크런이 발생한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미국 의회를 통해 연방예금보험공사(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FDIC 홈페이지)를 설립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면서 예금자 보호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