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7월 19일 부곡하와이 회사 제일흥업 폐업
2024-07-19 어기선 기자
온천 발견되자
원래 영산온정이라고 해서 온천수가 나왔다. 그런데 1973년 온천이 발견되면서 1979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됐고, 우리나라 최초의 워터파크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당시 영남 지역은 대단지 공장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면서 공장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휴양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배종원 회장은 재일교포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등과 더불어 일본에서는 상당히 꼽히는 재력가로 성공한 인물이었다. 1973년 온천이 발견되자 1976년 재일본 한국 본국투자협회를 결성한 후 제일흥업을 설립했고, 1979년 부곡하와이가 개장됐다.한때 신혼여행지로 각광
부곡하와이가 우리나라 최초 워터파크이기 때문에 한때는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전에는 주로 국내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관광시설이 변변하게 있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여행지가 많지 않았다. 당장 제주도를 가려고 해도 비행기를 타야 하는 부담 때문에 결국 신혼여행지로 부곡하와이가 각광을 받았다. 따뜻한 온천물과 워터파크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신혼여행지로 최적의 장소가 됐다. 또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해외 유명 관광지가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이번에는 부곡하와이가 수학여행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부곡하와이 주변이 대규모 공단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눈부신 산업 발전과 휴양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으로 부곡하와이가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경쟁자는 늘어나는데 시설 투자는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그것은 캐리비안 베이 등 워터파크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경쟁이 치열하게 됐다. 문제는 시설 투자를 잘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시설의 노후화가 진행됐다. 시설투자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영남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 아니었냐는 이야기가 있다. 즉, 캐리비안 베이가 출현했을 때만 해도 캐리비안 베이는 ‘수도권’이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부곡하와이의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캐리비안 베이를 필두로 해서 계속해서 워터파크가 지역별로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영남에서도 워터파크가 생겨났다. 당연히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온천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깔리기 시작했다. 부곡하와이가 ‘워터파크’이기는 하지만 부곡온천을 기반으로 한 워터파크라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부곡하와이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에피소드로 부곡하와이에 가족여행을 온 서모씨가 집을 비우는 동안 도둑 맞을까 염려해서 전재산 350만원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하지만 놀이기구를 타던 중 공중에서 돈이 쏟아지면서 휘날려 버렸고, 사람들이 돈을 줍는 사건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