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8월 2일 통킹만 사건

2024-08-02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64년 8월 2일은 베트남 전쟁의 전환점이 된 통킹만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북베트남 해군이 미국 해군 함선을 공격함으로써 베트남 전쟁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미군과 북베트남은 그 이전에도 게릴라 전투를 통해 계속적으로 교전을 해왔다. 하지만 해당 사건으로 인해 미국이 대규모 부대를 파병해 베트남 전쟁을 본격화했다. 그 이전에도 베트남 전쟁은 있었지만 이때부터 확대되면서 우리나라도 베트남에 파병을 하게 됐다.

북베트남의 선제공격은 맞아

통킨만 사건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전체 사건을 조작했거나 왜곡했다고 알고 있지만 북베트남이 미군을 선제공격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베트남에서도 이를 인정했다. 또한 이미 그 이전에도 소규모 게릴라 전투가 있었기 때문에 해당 사건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대규모 군사행동을 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다. 다만 이날 1차 공격에 이어 2차 공격을 받았다고 미국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그로 인해 국민의 여론이 분노로 가득찼다는 점에서 미스테리하다. 그리고 2차 공격은 실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베트남에 의해 2차 공격을 받았다고 미국이 발표했지만 2차 공격은 없었다. 이것이 의도적 조작인지 실수인지 등은 아직도 판명된 바는 없다. 하지만 2차 공격을 받았다고 언론에서 대서특필을 하면서 미국 국민들은 베트남에 대대적인 파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베트남 전쟁이 대규모로 확전되게 됐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끝나면서 미국은 베트남 공화국 즉 남베트남에 간섭을 해야 했다. 인도차이나 지역의 복잡한 배경을 미국은 잘 몰랐지만 남베트남을 적화되게 방치하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자유진영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적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남베트남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특히 6.25전쟁 발발로 인해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남베트남에 무기와 물자 등을 파격적으로 지원을 하게 된다. 미국은 6.25 전쟁에 직접 참전하면서도 남베트남에는 물자와 무기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남베트남을 응원했던 것이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끝나면서 남베트남은 공화국이 들어섰다. 그러면서 6.25 전쟁이 휴전으로 끝나자 미국은 본격적으로 남베트남에 개입을 하기 시작했다.

토지개혁 실패로

남베트남은 공화국으로 전환했지만 문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지주계급의 눈치를 보면서 토지개혁에 실패를 하게 됐다. 그러면서 농민들의 민심을 잃어갔다. 아울러 미국의 막대한 원조에 정권은 점차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도자들은 점차 사치와 향락을 일삼기 시작했다. 민심이 이반되자 이번에는 비밀경찰을 조직해서 반대파 등 정적을 마구잡이로 투옥시키면서 치안은 더욱 악화됐다. 미국이 지원해준 무기는 농민들에게 흘러들어가면서 베트콩이 돼버렸다. 그러면서 간헐적으로 게릴라 전투가 벌어졌다. 통킨만 사건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게릴라 전투는 그렇게 발생했다. 여기에 미국이 당시 지도자인 응오딘지엠을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남베트남 장군들에게 거금을 찔러주고 쿠데타를 사주했다. 응오딘지엠은 살해당했다. 문제는 장군들이 정치력이 형편없으면서 빠르게 더욱 부패해갔다. 그야말로 남베트남은 풍전등화였고, 통킨만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