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대신 소주…베트남 시장 ‘술맛’이 바뀌었다

2024-08-03     박영주 기자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술과 관련해서는 동남아 내에서 ‘큰 손’으로 꼽히는 베트남 시장에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기존에는 맥주가 강세를 보이며 하이네켄이 1위를 차지할 정도였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맥주 대신 ‘소주’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현지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의 실적까지 갈리는 모양새다.  전통적인 강자 하이네켄은 전체 판매량 감소로 연간 가이던스를 하향조정했지만, 소주를 판매하는 하이트진로는 베트남 시장에서의 매출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한국 주류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잘 알고, 많이 마셔본 한국 주류는 ‘소주’라는 조사결과가 나오면서 소주의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비아 호이’ 즐기던 베트남, 소주에 빠졌다
점유율 1위 달리던 하이네켄, 맥주 판매량 줄어 
베트남서 과일소주 넘어 일반소주까지 매출 상승  

여름철 노점에서 얼음을 넣은 국민맥주 ‘비아 호이(Bia hoi)’를 마시는 것은 베트남 음주 문화의 대표적인 모습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베트남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맥주 소비국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실제로 베트남 시장 내에서 맥주 1‧2위를 다투는 업체는 현지 주류회사 사베코(Sabeco)와 글로벌 맥주회사 하이네켄으로 알려져있다. 글로벌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하이네켄이 점유율 44%로 현지 맥주시장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트남 시장 내 주류 트렌드에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맥주 대신 ‘소주’를 즐기고,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을 즐기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최근 하이네켄이 밝힌 실적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맥주 판매량은 전년동기 대비 5.6% 줄었고 지역별로는 아시아‧태평양에서의 감소폭이 13.2%로 가장 컸다.  베트남이 경기둔화에 직면하면서 맥주 소비량이 줄었다는 분석이 있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맥주 판매량이 줄어든데 더해 하이네켄이 인플레이션 여파로 맥주가격을 올리면서 이것이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는 분석에 힘이 실렸다. 베트남 시장 소비자들 자체가 ‘가성비’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한데 하이네켄의 가격 인상으로 인해 제품 매력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베트남 시장 내 전통강자 ‘맥주’가 맥을 못 추는 사이에 틈새를 파고 들어간 것이 ‘소주’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2021년 대비 2022년도 베트남 소주 매출이 21% 가량 성장했다. 2016년 하노이 법인을 시작으로 점유율 확대에 주력해온 결과 연평균 15% 안팎의 성장률을 보였는데 성장폭이 더욱 커진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상황이 이어지던 2021년에는 하이트진로의 소주류 제품이 베트남 스피릿 시장에서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기존에는 자몽‧청포도‧자두‧딸기 등 과일소주인 ‘에이슬’ 시리즈를 중심으로 매출이 발생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일반소주 매출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과일소주로 소주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진 베트남 소비자들이 일반소주의 맛에도 눈을 뜨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사측에 따르면 베트남 시장을 대상으로 한 주류 수출은 최근 3년간 연평균 100%의 성장률을 상회하고 있으며,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과일소주인 ‘순하리’를 중심으로 매출이 늘고 있으며 일반소주 제품의 수출도 소폭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트렌드에 발맞춰 지난 4월에는 소주 아티스트 퍼니준이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컴플렉스01(Complex01)’에서 소주와 관련한 전시를 진행했으며, 6월에는 래퍼 박재범이 ‘원소주’를 판매하는 원스피리츠 대표 자격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경제사절단에 동행했다.  베트남에서 소주가 인기를 끌자, 현지에서는 한국 소주와 비슷한 형태의 초록색 병에 담긴 ‘짝퉁소주’까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소주가 상대적으로 고가에 팔리는 만큼, 짝퉁소주가 저렴한 가격에 틈새공략을 하고 있지만 맛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대체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달달한 맛의 과일소주에 흠뻑 빠진 베트남 현지 젊은층들은 이제 일반소주로까지 눈길을 돌리고 있다. 
/사진=하이트진로
소주에 대한 글로벌 인식도 점차 좋아지고 있다. 한식진흥원이 외국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해 1일 밝힌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한국의 술은 ‘소주’였다. ‘한국 주류 중 알고 있는 주류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1.2%가 소주를 꼽았고 그 뒤를 맥주(32.2%), 과실주(24.6%), 청주(18.0%), 탁주(16.3%)가 이었다. 소주의 대륙별 인지도는 동남아시아가 68.1%로 다른 권역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였고, 주종별 수출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소주 수출액은 전년대비 13.2% 증가한 9300만 달러수준으로 1위를 기록했다.  한국 주류를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는 41.5%가 ‘맛있어서’를 꼽았고, 그 뒤를 ▲향이 좋아서(15.3%) ▲한국 드라마, 영화 등에서 접해봐서(14.8%) ▲도수가 낮아서(12.1%) ▲주변에서 추천 받아서(9.6%) 등의 응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