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잼버리 화장실 그리고 정주영 ‘양변기’

2024-08-07     어기선 기자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파문이 점차 진정세를 보이는 가운데 전북지역 공무원 노동조압 관계자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지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공지문에 따르면 잼버리 야영장 내 화장실과 샤워실이 지저분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조직위원회(조직위) 측은 전북도·김제·부안 공무원들을 청소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작성자 A씨는 자신이 본 현장이 개판 5분전이었다면서 “화장실은 최근 수세식이 아닌 일명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11개국에서 온 외국 청소년들의 눈에는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기의 역사

양변기는 원래 용변 처리가 아니라 다이빙에서 고안된 발명품이다. 다이빙을 할 때 물이 많이 튀면서 주면에 있는 사람들의 옷을 젖게 된다는 문제 때문에 물이 튀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아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에 영감을 얻은 발명가들이 용변을 보는 용도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이빙용 수조와 비슷한 모양이면서 크기를 대폭 줄이고 물탱크와 하수관을 연결하는 형태의 양변기가 탄생했다. 최초의 변기는 그렇게 1596년 영국에서 존 해링턴에 의해 발명됐다. 하지만 대중화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시 유럽에서는 하수도 정화 시설이 없었고, 오물을 그냥 길거리에 버리는 것이 통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제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공중화장실 유적이 발견됐다. 나무로 된 변기에 앉아 용변을 보면 수로를 통해 물과 함께 흘러가도록 고안이 됐다.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좌변기가 설치된 것은 대한제국 당시 덕수궁 석조전으로 고종황제의 황실로 사용되는 건물에 영국식 수세식 변기를 설치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때 관공서나 백화점, 호텔 등에 좌변기가 설치됐고, 한국전쟁때 미군의 영향으로 일부 시설에 설치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부터 좌변기가 국내 기술로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가정집에 대중적으로 보급되던 시기는 1980년대 초반이었다.
정주영

정주영 신화와 함게 한 양변기

양변기 일화 중 유명한 일화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일화이다. 현대건설을 세운 정주영 회장은 북한의 침공으로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정 회장은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리고 1952년 12월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숙박할 장소가 없어서 운현궁으로 숙소를 정했다. 다만 서양식 거실과 화장실이 없었다. 이에 화장실 공사와 난방공사를 현대건설이 따냈다. 문제는 정 회장이 태어나면서 양변기를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양변기를 만들 수 있는 물품과 정보를 찾아냈다. 결국 겨우겨우 화장실 공사와 난방공사를 마무리하면서 미군들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고, 현대건설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한 당시 현대건설의 활약은 이 이외에도 부산 유엔군 묘지 참배 일정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한겨울이었지만 미군에서는 유엔군 묘지에 푸른 잔디를 깔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정 회장은 낙동강 주변에 겨울철 보리를 떠서 유엔군 묘지에 심어 잔디 대신 보리로 푸른 광장을 만들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흡족한 마음으로 참배하고 떠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