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 세계로의 산티아고 순례길 02] 첫 날, 험준한 피레네 산맥 넘은 후, 프론트에서 기절
- 순례길의 진면모를 마주한다는 ‘나폴레옹 길’, 7~9시간 걸려
- 오리손 마을에서 맛 본 콜라, 제일 비쌌지만, 가장 달콤했다
- 발에 물집 안 걸리려면, 넉넉한 신발과 순례 중 수시로 발을 말려야
2024-08-07 양시영 인플루언서
[파이낸셜리뷰=양시영 인플루언서]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된 첫 날,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이하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의 거리는 25.20km. 다들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면 멋진 자연을 배경 삼아 광활한 평야를 걷는 자신을 떠올리겠지만, 험준한 피레네 산맥이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걷는 구간엔 두 가지 코스가 있다. 첫 번째는 ‘나폴레옹 길’로 가파른 산맥을 장장 7~9시간을 넘는 코스이며, 두 번째는 우회 루트인데 여러 이유로 험한 산맥을 넘기 어려운 순례자들이 이 코스를 선택한다.
대부분 순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진면모를 마주하고자 나폴레옹 길을 선택하지만, 오랜 산행이 버겁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순례자라면 무리하지 말고 꼭 우회 코스를 선택하길 바란다.
1일차.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맑은 피레네산맥
7년 전 처음 피레네산맥을 넘을 당시, 속절없이 쏟아지는 폭우로 온몸을 덜덜 떨며 진흙 길 산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상행길에서부터 맑은 피레네를 볼 수 있었고, 멋진 자연경관에 취한 채 8km쯤 걷다 보니 오리손(Orison)이라는 마을에 금세 다다랐다.
오리손은 산 중턱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인데 알베르게는 고작 2개, 바는 1개뿐이라 론세스바예스까지 가기 버거운 소수의 순례자가 이곳에 묵곤 한다. 나는 바에서 콜라 하나를 사서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역시나 산 중턱이라 그런지 3유로(4천 원)라는 피레네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순례길에서 마신 콜라 중 제일 비싼 콜라였지만, 가장 달콤한 콜라였음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오전 7시에 출발한 순례가 오후 4시에 마무리됐다. 론세스바예스에는 알베르게가 하나뿐인데, 침대 수도 180개로 넉넉해 거의 모든 순례자가 이곳으로 모인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다른 순례자들과 체크인을 기다리던 중, 나는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유 없이 찾아온 컨디션 악화였다.
제대로 먹지 않고 산맥을 넘은 탓인지,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그렇게 자리에 주저앉아 잠시 기절해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체크인 카운터로 가니 순례 중 만났던 파블로 아저씨가 있었고, 창백한 내 얼굴을 보고선 서둘러 체크인을 도와줬다. 그대로 나는 배정받은 침대로 가 연신 잠으로 체력을 보충했고, 그렇게 정신없이 순례 첫 날이 지나갔다.
2일차. 첫 대도시이자 젊음의 열기 가득한, 팜플로나
2일 차 순례는 1일 차에 비하면 순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주비리(Zubiri)까지는 21.34km이며, 완만한 내리막 길이 대부분이다. 순례자 1호 님과 우연히 만나 바에서 맥주 한 잔을 하기도 하고, 힘들 때면 길가에 철퍼덕 앉아 땀이 흥건한 두 발을 말리며 물집에 대비하기도 했다.
많은 순례자가 발에 생긴 물집으로 고생하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먼저 신발 선정이 중요하다. 본인 신발 사이즈보다 2치수가량 큰 신발을 착용해 발 부종에 대비해야 하고, 걷는 중에는 2시간에 한 번씩 발에 난 땀을 바람에 잘 말려줘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잘 마쳤다면 그 후부턴 부디 물집이 잡히지 않길 하늘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3일차. 팜플로나(Pamplona)에서 느끼는 젊음의 열기
3일 차 순례의 목적지인 팜플로나(Pamplona)는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는 첫 대도시이자 대학 도시로 젊음의 열기로 가득한 곳이다. 학생들이 갈 만한 맛집, 술집 등 소위 핫플레이스가 많아, 순례자들 모두 이 도시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안고 20.25km 여정을 거뜬히 걷는다. 더욱이 한국인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라면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회로를 돌리며 걷곤 한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컵라면과 봉지라면 하나씩 구매한 뒤, 저녁은 멋들어진 스페인 식당에서 먹을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초보 순례자를 맞이하는 건 시에스타(Siesta)뿐….
시에스타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보통 약 3시부터 7시까지 갖는 스페인의 낮잠 시간인데, 이때는 간단한 타파스(스낵)와 주류만 판매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렵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숙소로 돌아가 컵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며 내일의 순례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렇게 어설프면서도 침착하게, 나만의 방식으로 순례길에 적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