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금 모으기 운동

2024-08-08     어기선 기자
외채상환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닥치면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범국민적 운동이다. 구한말 국채보상운동과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 국민이 금을 모아 한국은행의 금 보유고를 높이고, 그 금을 통해 국가신용도를 제고한 후 그를 바탕으로 외환보유고를 늘린다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애국가락지 모으기 운동에서부터

1997년 11월 20일 새마을운동 단체 중 하나인 ‘새마을부녀회 중앙연합회’의 ‘애국가락지 모으기 운동’이 시초가 됐다. 이는 1907년 대한제국의 국채를 갚자는 차원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차원에서 회원들이 금으로 된 물건을 모아 국가에 헌납하기로 한 것이 유래가 됐다. 12월 3일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추진위원회에서 이같은 운동이 보고됐고, 정부는 경제난 극복을 위해 만간단체 차원의 바람직한 활동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국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이 확산됐고, 1998년 1월 5일부터 ‘KBS 금 모으기 캠페인’이 시작됐다. 국민들은 장롱 속의 금붙이를 꺼내 은행으로 가져갔다. 그 중에는 신혼부부는 결혼반지를, 젊은 부부는 아이의 돌반지를, 노부부는 자식들이 사준 효도 반지를 내놓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추기경 취임 대 받은 십자가를 쾌척했고, 오히려 주변에서 만류를 했다. 2개월간 금 모으기 운동이 전개됐고, 전국적으로 351만명이 참여해 약 227톤의 금을 모았다. 이는 4가구당 1가구 꼴로 평균 65g(17.33돈)을 내놓은 셈이다.

IMF 초금리 정책 철회 끌어내

이렇게 모인 금은 대부분 수출됐다. 수출한 가격은 22억 달러였다. 다만 이것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 모으기 운동이 효과를 발휘한 것은 국제통화기금이 시행한 한국 초고금리 정책의 철회를 이끌어 냈다. 당시 IMF는 초고금리 정책을 통해 외국인들의 한국 투자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기준금리가 22%로 치솟았다. 이렇게 치솟으면 기업의 침체와 도산만 앞당기게 됐다. 그런데 금 모으기 운동으로 인해 구제금융 300억 달러 채무 일부가 상환되자 초고금리 정책을 철회했다. 다만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원인을 국민의 과소비로 치부하고, 국가와 기업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한 그런 모습을 보여왔다. 그럼에도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전체주의’적 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금 모으기 운동, 7개 기업 직원들 탈루 의혹 연루

여기에 기업들의 탈루 의혹 소식이 들렸다. 대기업 직원들과 금 도매상이 변칙적인 금괴 수출입 거래를 통해 2조원대 세금을 포탈했다가 검찰에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세금 포탈에 가담한 대기업은 lg상사, sk상사, 삼성물산, 현대종합상사, 한화, ls니꼬 동제련, 고려 아연 등 7개 기업에 소속된 직원들이었거나 퇴사한 직원들이었다. 당시 대기업은 금 225톤을 수출하는데 참여했다. 하지만 1998년 중반을 넘어가면서 원화 환율이 급락하면서 수익률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손해를 보면서 정부 세법상 허점을 발견한 후 범죄에 활용했다. 정부로부터 금 가격의 10% 부가세를 돌려받는 수법을 고안한 것이다. 대기업 직원들은 영세율, 면세제도 및 부가세 대리징수제도 등 세법상의 전문 지식과 금괴거래를 이용해 거액의 부가세를 포탈하고 부정환급 받은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이를 위해 대기업상사와 대형 금 도매업체가 공모했고, 여기에 160여개 폭탄업체를 비롯해 수백개의 종로 금도매업체가 가담했다. 금괴는 수출입할 때 세금이 면제되고 내수용으로 거래되면 부가세 10%가 당시 붙었다. 국내 시장에 유통되던 금이 수출용으로 거래되면 수출업체가 금값 이외에 부가세를 판매업자에게 지급하고 판매업자는 국세청에 이를 납부해야 한다. 대신 수출업체는 수출할 때 판매업자에게 줬던 부가세를 국가로부터 환급받는 구조였다. 따라서 면세로 매입한 금괴로 과세로 전환해 매출할 경우 수출업체로부터 받은 부가세를 국가에 납부하지 않고 폐업을 하는 폭탄업체가 우후죽순 나타난 것이다. 그만큼 대기업과 금도매업체의 주머니는 두둑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