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경제리뷰] 귀스타브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

2023-08-28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50년에 제작한 귀스타브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은 프랑스 사실주의 미술의 태동을 알리는 작품이다. 사실주의는 리얼리즘이라고 해서 19세기 과학과 객관적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예술사조이다. 기존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에 대항해서 태동된 예술사조라고 할 수 있다. 구스타브 쿠르베는 천사를 그려달라는 요청에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으므로 천사를 그릴 수 없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 구스타브 쿠르베의 미술작품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오르낭의 매장’이다.

장례식장 주인공이 ‘현실 사람들’

오르낭의 매장은 쿠르베의 고향 오르낭에서 벌어진 장례식 장면을 묘사했다. 실물 크기의 인물들로 40명이 등장하며 화폭은 6m이다. 해당 그림이 발표됐을 때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것은 화폭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화폭이 너무 큰데다 굳이 일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장례식 장면은 주로 종교화로 분류됐다. 이에 신의 구원, 혹은 영혼의 승천 등을 묘사해왔다. 하지만 해당 그림에서는 수평적 파노라마 구도를 사용했다. 즉, 장례식을 주도하는 성직자, 귀족, 일반 농민 등 모두가 하나의 수평선상에서 평등한 인물로 묘사됐다. 오로지 인간적인 유다감으로 서로 의로하면서 상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있다. 여기에는 신의 영역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귀족들도 개입이 되지 않은 작품이다. 기존의 장례식 문화를 그린 미술작품에는 하늘에는 천사가 있고, 땅에서는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며,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영혼을 위로하면서 신을 찬양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쿠르베의 해당 작품은 신의 개입이 없고, 성직자의 개입이 없고, 귀족들의 개입도 없다.

2월 혁명 이후

쿠르베가 이처럼 사실주의 화가가 된 것은 1848년 혁명 즉 2월 혁명으로 제2공화정이 탄생하면서 미술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자유’ ‘평등’ ‘박애’가 녹아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1848년 쿠르베 작품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1849년 건강상의 이유로 오르낭으로 낙향하면서 오르낭에서의 일상생활을 접하게 되면서 사실주의 화가로서의 명성을 더욱 높이게 만들었다. ‘돌을 깨는 사람’은 미천한 일을 하고 있는 두 노동자의 황폐한 시골마을을 배경으고 하고 있으며 그 다음해인 1850년 ‘오르낭의 매장’은 농민의 장례식을 그렸다. 이에 쿠르베는 브루주아지와 농민을 화폭에 담으려고 시도했고, 이에 신이나 성직자, 천국 그리고 지옥 등을 표현하지 않고 현실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