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헴리브라’ 급성장 불편했나…GC녹십자, JW중외제약 견제?
자사 연구진 통해 혈전 이상사례 연구결과 발표…‘이례적 저격’ 논란
‘한국혈우재단’ 약심위 심의까지 엮이며 논란 증폭…업계 “과한 견제”
2023-08-30 박영주 기자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피하주사라는 강점을 앞세워 블록버스터의 탄생을 예고했던 JW중외제약의 혈우병치료제 ‘헴리브라’가 경쟁사 GC녹십자의 연구결과 발표로 때아닌 혈전 이상사례 논란에 휩싸였다.
GC녹십자 측이 헴리브라와 8인자 제제 투여군의 혈전 이상사례를 비교해 헴리브라의 혈전 이상사례 보고율이 2.83배 높다고 주장한데 이어 JW중외제약에서 즉각 잘못된 해석이라 반박에 나섰기 때문이다.
해당 논란이 불거진 시점은 공교롭게도 한국혈우재단 의약심의위원회에서 헴리브라 처방에 대한 심의가 진행 중인 때다. GC녹십자의 故 허영섭 초대 회장이 설립한 한국혈우재단은 국내 혈우병 환자 절반 이상의 치료를 맡고 있는 만큼, 심의를 통과하면 시장 내 파급력이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제약업계 내에서는 “GC녹십자가 헴리브라 견제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으면서도, 과도한 설전은 환자들이나 업계에도 결코 좋지 않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거침없는 ‘헴리브라’…적응증 확대, 급여 확대, 실적 견인
GC녹십자, 견제 의도 있었나…혈전 이상사례 보도자료 배포
JW중외제약 “경쟁사 약 언급하며 폄훼, 매우 유감스럽다”
2020년 국내 시장에 출시된 JW중외제약의 A형 혈우병 예방요법 치료제 ‘헴리브라’는 정맥주사 형태였던 기존 약제들과 달리 피하주사형이라는 강점에 4주에 1회라는 투약 편의성 덕에 ‘승승장구’를 이어왔다.
식약처로부터 항체를 보유한 A형 혈우병에 대한 예방요법제로 시판허가를 받은 이후, 항체를 보유하지 않은 중증 A형 혈우병 환자에까지 적응증이 확대됐고, 지난 5월에는 환자들의 거듭된 요청에 힘입어 건강보험 급여확대 적용을 받기까지 했다.
실적 면에서도 매출액이 지난해 2분기보다 211.1% 증가한 44억원을 기록하는 등 역대급 실적 향상을 이끌어내면서 JW중외제약 주가를 견인했다. 업계에서는 헴리브라가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클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21일 GC녹십자에서 ‘헴리브라 혈전 이상사례 보고율’과 관련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때아닌 논쟁에 불이 붙었다.
GC녹십자는 자사 연구진이 지난 2018~202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의약품 이상사례보고시스템(FAERS)을 분석한 결과, 헴리브라 투여 후 발생한 이상사례 2383건 중 혈전 이상사례는 97건으로 전체 이상사례의 4.07%를 차지한 반면 8인자 제제는 1.44%에 그쳤다며 이상사례 보고율이 2.83배 높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연구는 GC녹십자 최봉규 데이터사이언스 팀장 외에도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신주영 교수, 한국혈우재단 부설의원 유기영 원장 등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이같은 내용은 미국출혈장애학회(BDC)에서 발표됐다.
JW중외제약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GC녹십자의 자료가 배포된 다음날인 22일 즉각 입장문을 내고 “각 제품의 출시시점, 작용기전, 보고기준 등이 다른 점을 고려하지 않고 경쟁사 약을 직접 언급하며 공식적으로 폄하하면서,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혼란을 주는 이같은 행위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날을 세운 것이다.
JW중외제약은 “녹십자가 발표한 데이터 출처인 FDA FAERS는 자발적 이상사례 보고 시스템으로, 전체 약제의 이상사례가 모두 수집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하는 한편, 제품 간 이상반응 발생률을 비교하려면 각 제품별 총 투여환자수 대비 이상사례 발생수가 필요한데 전체 이상사례수 대비 혈전이상사례를 계산한 것은 ‘비약’이라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지난 4분기 기준으로 헴리브라의 점유율이 51%, 8인자 제제가 49% 정도로 비슷한데 전체 이상사례수는 8인자 제제가 헴리브라에 비해 3배 많다며 반대되는 수치를 제시했다.
이같은 공개반박에 GC녹십자는 재차 입장문을 내고 “이번 연구 발표는 특정 회사 제품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통계왜곡은 없다고 자신들의 주장을 재차 강조했다.
GC녹십자에서는 어디까지나 공익적 차원의 연구였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고는 있지만, 현재 GC녹십자가 8인자 제제를 기반으로 한 ‘그린모노’와 ‘그린진에프’ 외에도 다케다제약의 ‘애드베이트’를 판매 중이라는 점 때문에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혈우재단’ 약심위 문턱 못 넘은 JW중외제약
제약업계 “GC녹십자가 과하게 견제한 듯…유감스럽다”
더욱 논란을 키우는 부분은 현재 JW중외제약과 GC녹십자의 혈우병 치료제 관련 논쟁에 ‘한국혈우재단’이 엮여있다는 점이다.
JW중외제약 헴리브라는 급여확대 적용을 받고 환자들로부터 처방 가능시기를 묻는 요청이 끊이질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한국혈우재단 산하의 의약심의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혈우재단은 국내 혈우병 환자 절반 이상의 치료를 맡고 있기 때문에 심의를 통과하면 시장 내 막대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해진다. 때문에 헴리브라가 혈우병 치료제 시장 내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한국혈우재단 약심위 문턱을 넘겨야만 한다.
하지만 한국혈우재단은 ‘안전성’을 이유로 JW중외제약에 추가자료 보완을 요구한 상태로, 아직 심의가 완료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심의가 진행되는 민감한 시기에 GC녹십자가 헴리브라의 혈전 이상사례 보고율 관련 보도자료를 낸 것은 의도한게 아니더라도 충분히 의심받을 수 있다”며 “헴리브라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끼고 과하게 견제한 것이라는 말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한국혈우재단이 故 허영섭 GC녹십자 초대 회장이 설립한 재단인데다가 매년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석연치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30일 혈우재단 측은 “다른 병원에서는 헴리브라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재단 약심위를 통과돼 처방되기 전까지는 다른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헴리브라를) 사용할 수 있도록 환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홈페이지에 헴리브라 제품에 대한 소개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한국혈우재단 홈페이지에는 재단 부설의원에서 처방하는 약품만 공개하고 있다”며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약품이 많은데 홈페이지를 보고 재단 의원에서 처방가능한 약품으로 오해하고 내원하는 일이 있을까봐 그렇다”고 설명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한 회사가 차지하고 있던 시장에 새로운 약제가 들어온다고 해서 연구실적 등과 관련해서 과도하게 견제하는 등의 행보는 옳지 않다고 본다”며 “시장이 커지고 발전이 이뤄져서 환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끔 해야 하는 것이 제약‧의료시장인데 흠집내기식 자료발표는 좀 유감스럽다”고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