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9월 8일 무굴제국 멸망

2024-09-08     어기선 기자
영국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58년 9월 8일은 인도 무굴제국이 멸망한 날이다. 한때 청나라와 더불어 전세계 GDP 2위 국가였지만 영국에 의해 멸망되고, 인도는 식민지가 됐다. 서구 유럽이 대항해시대를 맞이해서 인도에 도착했을 때 서구 유럽은 많은 부를 쌓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은 서구 유럽에서 만든 제품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만큼 인도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품질이 유럽산보다 우수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초반에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인도와 교역을 했지만 점차 동인도회사로는 인도를 통제할 수 없겠다고 판단하면서 결국 식민지로 삼았다.

동인도 회사의 출현

15세기 서구 유럽에서 신항로를 발견하면서 아시아 국가들과 교역을 위한 무역기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초반에는 교역을 함으로써 충분히 가능하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인도의 면직물과 영국의 모직물의 거래에서 당연히 인도의 면직물이 우수했다. 그러다보니 영국 동인도회사가 꺼낸 방법은 바로 인도의 각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우선 스라트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서 다른 지역으로 침략해 나갔다. 마침 인도는 각 지역에서 무굴제국에 대항하는 여러 정권들이 등장하면서 분열했다. 이에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에 대한 지배를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고, 프랑스와 더불어 뱅골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세력 다툼을 벌였다. 그리고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영국은 프랑스를 무찌르고 뱅골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인도 지배의 기초를 다지게 됐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인을 중심으로 한 유럽식 군인 용병인 세포이를 양성하게 됐다. 그러면서 인도 각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한때 GDP 2위 국가

무력으로 점령해 나가고 있던 영국 동인도 회사는 영국 자국의 면직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인도산 면직물에 대한 수입 관세를 높이고, 영국산 면직물에 대한 인도의 수입관세를 최대한 낮추는 정책을 시행했다. 당시 영국은 수력(水力发电)을 이용해서 면직물 공장을 가동했고, 인도는 수공업으로 면직물을 가공했다. 하지만 인도의 수공업이 훨씬 임금이 저렴했기 때문에 영국의 면직물 산업이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영국 동인도 회사 입장에서는 관세를 통해 영국 면직물 산업을 보호해야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 관세였다. 그 결과 수공업에 의존했던 인도 면직물 산업이 무너졌고, 영국 산업발달에 필요한 원료 공급지 및 상품 시장으로 전락했다. 여기에 면화, 차, 아편 등의 상품작물을 강제 재배하면서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 농촌들을 수탈해 나갔다. 이로 인해 인도인의 반영 감정은 높아졌다.

세포이 항쟁 발발

여기에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 인도인 용병 즉 세포이가 영국 동인도 회사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연공에 따라 진급을 시키는 영국 육군의 진급제도를 적용하다보니 나이가 있었던 세포이들은 불이익을 받았다. 게다가 영국 동인도 회사는 자꾸 해외 원정을 요구하면서 세포이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원래 세포이들은 해당 지역을 지키기 위해 고용된 용병인데 해외원정을 시키려고 하니 세포이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영국 동인도 회사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세포이들의 퇴직 연금을 중단시켰다. 가뜩이나 인도 경제가 붕괴된 상태에서 퇴직 연금까지 중단되면서 영국 동인도 회사를 향한 불만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세포이가 항쟁을 일으키자 인도인들도 합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도 독립전쟁 성격이 강해졌다. 세포이 항쟁에는 세포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국 동인도 회사의 수탈에 피해를 입은 수공업자, 농민, 상인 등이 대거 참여했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결국 영국 본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세포이 항쟁을 진압한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폐지하고, 명목상 남겨뒀던 무굴 황제도 페위를 시켰다. 그러면서 식민지 시대로 접어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