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작가의 어설픈 제주 이야기] 제주항 새벽시장에 가면 횡재할 수도...

-제주에서 육지 출장갈 때, 시간 효율을 위해 가끔 배를 탄다 -제주항 옆 작은 항의 산지포구, 오일장보다 훨씬 저렴하다 -팔뚝만한 갈치 두 마리에 만원, 다섯 마리에 이만원

2024-09-11     김민수 여행작가
팔뚝만한
[파이낸셜리뷰=김민수 여행작가] 제주도에 살기 시작한 지 일 년 반, 여전히 여전히 하루하루가 여행하는 기분이다. 제주도는 매우 큰 섬이다. 우리나라보다 섬이 많은 일본에서도 본토를 빼면 제주도보다 큰 섬은 없다. 제주도의 둘레는 243km, 동쪽 끝 성산에서 서쪽 끝 모슬포까지는 차로 달려도 1시간 40분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 못 가본 곳도 많다. 때때로 주민들에게 듣거나 발품을 팔다 알게 되는 지역 정보 또한 새롭다. 가끔은 육지 출장을 나간다. 직업이 여행작가다 보니 기고나 방송을 위한 취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항공편도 이용하지만 때때로 남부권이나 그곳에 속한 섬을 여행할 때는 배를 탄다. 목포에서 새벽 1시에 출항하는 퀸제누비아호는 5시간 후 제주항으로 들어온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어 애용하는 편이다. 이때 아내가 마중을 나온다. 

산지포구를 발견하다, 오지 은갈치가 이 가격에?

새벽녘 아내와 함께 해장국집을 찾다가 우연히 산지포구에서 생선을 파는 노점들을 발견했다. 산지포구는 제주항 옆에 있는 작은 항이다. 제주를 좀 아는 사람들은 건입동 제주시수협어시장과 물항식당 뒤편으로 이해하면 된다. 매대에 놓인 생선들은 오일장의 가격보다도 훨씬 저렴했는데 순간 대단한 거라도 발견한 양 가슴이 콩닥거렸다.
제주항
산지포구의
경매에서
제주항의 옛 이름은 산지항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동축항, 서축항으로 불렸다. 한라산에서 발원해서 제주항으로 흘러드는 산지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다. 물론 현재의 제주항은 10 부두까지 생겨날 만큼 규모도 커지고 영역도 넓어졌다.  노점의 주 고객은 부지런한 제주 아주머니들이다. 돈 만 원을 내고 날씬한 갈치 몇 네다섯 마리를 담아간다. 때 이른 삼치도 등장했다. 팔뚝만 한 녀석을 두 마리에 만원, 다섯 마리에 이만 원을 달란다. 더욱이 횟감이다. 갑오징어에 삼치 그리고 제주 할머니들께서 구워 먹으면 정말 맛있다며 추천한 고즐맹이(꼬치고기)를 샀다. 한 손으로 들 수 없을 만큼 묵직했지만, 고작 3만 원을 썼다. 집에서 제주항까지는 50분, 육지에 다녀올 때가 아니라도 가끔 나가 보기로 했다. 제주의 4대 해산물은 옥돔, 자리, 한치, 갈치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제주에서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옥돔, 5월부터 8월까지는 자리돔, 6월부터 9월까지는 한치, 그리고 7월부터 10월까지는 갈치가 제철이다. 그런데 갈치만큼은 어느 계절에 가도 볼 수 있다.
새벽이면
경매장에서
새벽녘
제주항으로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노점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곳의 생태는 제주도수협수산물공판장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즉 새벽녘 고깃배들이 포구로 들어오면 이곳으로 넘겨져 경매가 이뤄지고 또 그 생선들 일부가 소매되는 형식이다.  공판장 밖에는 박스로 생선을 파는 상인들이 늘어서 있다. 한눈에 봐도 노점보다 크고 실한 데다 가격도 훨씬 비쌌다. 제주의 큰 식당들은 경매에 직접 참여하고 소규모 식당들은 박스떼기를 해간다.  제주도에서는 갈치의 크기를 손가락에 비유한다. 삼지, 사지, 오지갈치 이런 식이다. 제주 갈치의 상품성이 높은 것은 주낙으로 잡기 때문이란다. 비늘이 온전하니 은갈치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빛깔이 곱다. 어획량과 계절에 따라 가격변동이 있지만, 당일바리 오지갈치 10kg 한 상자는 대략 30만 원을 호가한다. 여기서 당일바리는 그날 잡은 생물을 뜻한다. 오지갈치는 상자에 12마리 정도가 들어가는데, 관광객이 많이 찾은 상설시장의 마리당 6~8만 원에 비하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다.

틈새 시장을 노려야 저렴, 속이 뻥 뚫리는 갈칫국

그런데 한 상자를 사게 되면, 손질과 보관이 문제다. 식당에서야 소비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겠지만, 가정집엔 적당량이 필요하다. 그때 비로소 소분해서 판매하는 노점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산지포구
산지포구에서
그리고 경매에서 나온 B급 상품도 있음을 알게 됐다. 내장이 조금 터지거나 비늘이 벗겨진 경우로 작은 양을 싸게 살 수 있다. 아내는 중간 상인의 전화번호를 얻어왔다. 그리고 얼마 후, 전화가 왔고 제주항을 다시 찾았다. 오지보다 조금 작은 사지갈치 8마리에 7만 원, 손질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이쯤 되면 거의 횡재다.  냉동실에는 그렇게 사 온 갈치, 옥돔이 아직도 들어있다. 갈치는 조림으로, 구이로 또 국을 끓여 먹는다. 제주의 토속음식인 갈칫국은 만들기 쉽다. 갈치와 호박을 썰어 넣고 끓인 후에 조선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면 끝이다. 이때 채 썬 무나 배추 그리고 땡초를 추가한다. 칼칼한 맛이 그만이다. 제주항 새벽시장을 이미 알고 있는 여행 고수들도 있다. 이들은 갈치를 상자로 산 후 공판장 건너편 상가에서 손질과 포장을 맡기고 택배로 보낸다. 그리곤 육지로 돌아가서 지인들과 나눠 먹는다. 제주 물가가 비싼 편이라는 기사를 봤다. 동의한다. 하지만 신선한 제주산 생선을 싸게 사는 방법도 있다. 물론 부지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