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미의 여행테라피] 붉은 여름이 피는 곳, 병산서원의 배롱나무

- 400년 보호수로 지정된 여섯 그루의 배롱나무 - 배롱나무꽃과 향기에 취해 저절로 발길이 향하는 곳, 병산서원 - 병산서원, 서애 류성룡 선생과 그의 제자 류진 공을 배향

2024-09-12     이동미 기자
안동
[파이낸셜리뷰=이동미 여행작가] 여름이면 병산서원은 붉은 꽃 한 송이가 된다. 복례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좌우로 늘어선 배롱나무(Lagerstroemia indica)가 선분홍 꽃을 붉게 피우기 때문이다. 해사한 배롱나무꽃과 향기에 취해 병산서원에 들어서면 저절로 발길이 향하는 곳,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선생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 입구다.  높이 8m 내외, 가슴높이 둘레 1m쯤 되는 존덕사 앞 배롱나무는 안동시 보호수다. 2008년 4월 7일 보호수로 지정되었을 때 380년으로 표기되었으니 올해로 395년, 근 4백 년으로 추정된다. 400년 보호수로 지정된 배롱나무는 여섯 그루다. 병산서원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물이며 존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과 그의 제자이며 셋째 아들 수암 류진(柳袗, 1582~1635) 공을 배향한 서원이다. 
존덕사
류성룡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자리에 사당인 존덕사(尊德祠)를 건립하면서 1614년경 후손 류진(柳袗)이 배롱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400년 수령의 배롱나무 외에도 병산서원 일대 배롱나무는 120여 그루에 달한다. 여름철 붉은 꽃을 피우면 병산서원은 온통 붉은 빛으로 홀린 듯 이끌린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푸른 하늘과 흰 구름, 배롱나무의 초록 줄기와 붉은 꽃이 대비를 이룬다. 툭 떨어진 붉은 꽃송이는 초록 이끼가 낀 기와 위로 떨어져 더욱 선명해진다. 바람에 날린 배롱나무 꽃송이는 흙담 아래와 발밑에 떨어져 차마 걸음을 옮길 수가 없다. 뒤를 돌아보면 만대루(晩對樓, 보물 2104호) 지붕이 배롱나무 꽃다발 위에 얹어진 듯도 하다.
사당에
고직사에서
배롱나무는 더운 지방에서 잘 자란다. 한반도 남쪽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데 햇살 뜨거운 여름이면 가지 끝에서 고깔 모양의 붉은 꽃이 핀다. 여름 내내 피고 지고 또 피기를 거듭해 내리 100일을 꽃피우기에 백일홍(100天紅) 나무로 불린다. 세월이 지나면서 배기롱나무로 변했다가 지금의 배롱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또 백일 간 꽃이 피는 식물 백일홍과 구분되어 목(木)백일홍으로 불린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붉은 꽃이 가지 끝에 모여 원추 꽃차례로 피는데 꽃잎은 여섯 장으로 주름투성이다. 안쪽으로 수술이 30~40여 개 있는데 그중 가장자리에 있는 여섯 개의 노란 수술이 유난히 길다. 배롱나무는 대개 붉은색의 꽃이 피지만 흰색 꽃을 피우는 나무도 더러 있어 흰배롱나무라고 부른다.
만대루와
흙담
우리 선조들은 배롱나무를 아무 데나 심지 않았다. 사찰이나 서원에 주로 심었다. 배롱나무의 꽃말 중에 ‘청렴’이 있기에 장차 관직에 나가게 되면 청렴한 관리가 되라는 뜻을 담아 서원에 심었다. 배롱나무 줄기는 연붉은 갈색으로 껍질을 벗긴 듯 매끄러운 것이 특징, 껍질을 벗고 속살을 드러내는 것처럼 스님들 역시 속세의 묵은 때를 벗고 수행 정진에 힘쓰라는 뜻에서 사찰에도 심었다. 배롱나무는 줄기를 간지럽히면 간지러운 듯 가지가 흔들어진다. 그래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다. 굳이 간지럽히지 않아도 바람만 살짝 불면 가지가 흔들리고 꽃도 흔들린다. 뜨거운 여름날 파란 하늘과 만대루 지붕에 걸리는 배롱나무꽃을 보았고, 하늘을 가려준 배롱나무 꽃그늘에도 들어와 보았으니 이제 이 여름을 보내줄 수 있겠다.

안동병산서원 

주소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이동미 여행작가

여행작가이자 동화작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2011 한국 관광의 별 단행본 부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 힐링과 문화콘텐츠 그리고 지속가능한 여행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