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2024-09-15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50년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이 실시된 날이다. 6.25 전쟁이 발발한 후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난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반격의 기회를 맞이했고, 9.28 서울수복을 통해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몰아내게 됐다. 인천상륙작전은 한반도의 허리 부분을 장악하면서 전황을 뒤바꿨다. 그만큼 전쟁사에서 중요한 전투 중 하나였다.

낙동강까지 밀려난 국군

북한이 6.25 전쟁을 일으키고, 남침을 하면서 우리 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났다. 그러면서 전선은 고착화됐다. 북한군은 길어진 보급로 등으로 상당히 불리해진 형태가 됐따. 낙동간 전선에서 북한군은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했고 고지전만 계속 이어지는 그런 모습을 보였다. 이때 연합군은 역공을 펼칠 기회를 엿보았고, 그것은 맥아더 장군이 상륙작전을 결행할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군산 아닌 인천 선택한 이유

원래 인천상륙작전이 아니라 ‘군산’상륙작전이었다. 그 이유는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너무 컸고, 넓고 긴 갯벌이었으며, 높은 해벽이 있었고, 항구 인근에 인천이라는 대도시가 있으면서 시가전이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인천보다는 오히려 군산을 상륙작전의 최적지로 선정을 했다. 다만 인천 이외에는 답이 없었던 것도 현실이다. 군산은 상륙은 양호했지만 상륙해도 북한군의 보급선을 절단히자 못하고, 적 병력을 포위하지 못했다. 차라리 낙동강 방어선에 병력을 증원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북한군의 보급로를 완벽하게 절단하기 위해서는 인천 이외에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서울을 수복한다는 상징적인 면도 있었기 때문에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하기로 한 것이다.

인천상륙작전 결행하면서 낙동강도

인천상륙작전이 이날과 그 다음날 이틀에 걸쳐 결행하면서 낙동강 전선도 대대적인 반격 작전에 나섰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 낙동강 전선에 있는 북한군에게 알려지자 북한군은 붕괴되고 말았다. 육상교통의 중심지이면서 물자가 가장 풍부한 서울이 유엔군에게 점령당했다는 것은 북한군으로서는 상당한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품을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보급로가 절단나면서 그때부터 사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경상도를 침공하고, 한양을 거쳐 평양까지 북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격을 하지 못했던 것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해군이 한산도 대첩 등에서 계속해서 승리하면서 보급로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에게 더 이상 보급이 원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게 됨으로써 북한군이 붕괴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