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작가의 어설픈 제주 이야기 2] 제주에 와시난 오조리 한 번 가 보쿠가?
- 오조 해녀의 집 전복죽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오조리 - 족지물, 널찍한 것은 여자탕, 좁고 깊은 것은 남자탕 - 드라마 촬영지로 다시 등장한 오조리, 핫플레이스 기대
오조리를 아시나요?
오조리는 제주올레 2코스가 지나고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의 핵심구간이다. 하지만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여행 중 시간을 내어 한 번쯤 걸어본다면 ‘참 잘했어요.’하며 스스로를 토닥거리게 된다.
제주 걷기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됐다. 운동 삼아 시작한 것인데 지루하지 않도록 장소를 바꿔간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성산 내수면에서 오조리를 돌아오는 구간이다. 특히 마을을 지날 때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재미가 있다.
오조리가 일반 여행객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오조 해녀의 집의 전복죽 때문이었다. 어촌계원들이 순번을 돌아가며 만들어 팔던 전복죽은 마을 해녀들이 직접 잡아 올린 자연산 전복을 재료로 했다.
내장을 넣어 끓였기 때문에 색은 노랗고 맛은 담백 고소해 인기가 있었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오조리 마을풍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오조해녀의집은 여전히 운영 중이며 조심스레 들어선 식당과 카페도 마을 경계를 넘어오지는 못한다.
남녀 목욕탕 족지물, 용천수가 풍부한 마을의 혜택
오조리 마을 내에 주차한다면 족지 입구나 마을회관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그러면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마을 내 가장 예쁜 구간을 오롯이 돌아볼 수 있다.
오조리 연안습지는 최근 제주도 환경운동연합에 의해 습지보호지역으로의 지정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희귀조류인 저어새를 포함해 고니, 개리, 검은머리물떼새, 흰뺨검둥오리. 물수리, 물닭, 물병아리 등 수천 마리의 철새들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데크길 시작점은 오조리 인증샷 지점이다. 식산봉과 성산일출봉이 하나의 앵글에 쏙하고 들어온다. 이 길을 걸을 때 ‘평화롭다’란 말을 쓰면 정말 잘 어울린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를 걷는 듯한 느낌,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니, 더더욱 좋을 수밖에
원식생이 살아있는 식산봉
데크길을 지나면 식산봉을 만날 차례다. 바오름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니 분명 제주도 360개의 오름 중 하나다. 그런데 식산봉은 사방 어디에서 봐도 삼각형 모양이다.
고려, 조선시대에 걸쳐 왜구의 침입이 잦자 노람지(띠로 짠 가마니)를 짜서 식산봉 전체를 덮었단다. 군량미가 쌓인 것으로 오인한 왜구가 물러갔으니 마을의 수호신인 셈이다. 물론 이름도 그것에서 유래됐다.
식산봉은 온통 상록활엽수로 뒤덮여있다. 아마도 그 울창함은 원식생(사람이 살기 전부터 있었던 식물집단)부터 유지됐을지도 모른다. 식산봉 둘레는 우리나라 최대의 황근 자생지다. 희귀 염습식물인 황근은 여름에 노란 꽃을 피운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무성하게 잎이 자란 나뭇가지 때문에 시야는 조금 가리지만, 45m 높이에서 바라본 일출봉은 지상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저녁 무렵, 마을 뒤편으로 펼쳐진 노을을 만날 수 있다면 두 번째 인증샷을 찍을 차례다.
본디 성산 일출봉은 육계도였다. 터진목이라 부르는 육계사주를 통해 제주 본섬과 연결되고 떨어졌던 것을 일제강점기 말에 도로를 놓아 연륙하였다. 또한 갑문(한도교)이 놓이면서 오조리와 성산은 시야만큼 가까워졌다. 이는 식산봉 뒤편에서 성산까지 펼쳐진 온화한 바다가 내수면이 되었던 두 가지 이유다.
내수면에 물이 빠지면 제주 유일의 갯벌이 드러난다. 통알밭이라 부르는 이곳은 조개바당이다. 이른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바지락을 캐는 주민과 관광객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드라마 촬영지 세트장 등장, 다시 핫플이 될지도 몰라
식산봉에서 마지막 돌둑을 건너가면 오조포구나 나온다. 오조리는 선박 제조기술로 꽤 알려진 마을이었다. 오조 해녀들의 실력이 뛰어났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마을에서 제조한 선박을 이용, 뱃물질로 해산물을 채취했으니 활동 범위와 수확물의 양이 타 마을의 추종을 불허했을 것이다. 포구에는 과거 고깃배를 제조했던 석축이 길게 남아 있다.
오조리 포구는 TV드라마 ‘공항가는 길’ 촬영지로 한때 많은 관심을 받았다. 세트장으로 이용됐던 돌창고에 갤러리가 들어서고 난 후, 관광객의 발길은 점차 뜸해졌다. 간판만 내걸고 많은 날을 닫은 상태로 방치했기 때문이다.
오조예찬(吾照禮讚)
포구에서 마을회관로 나간 후에도 곧장 차를 가지러 족지 주차장으로 가선 안 된다. ‘발길이 닿는 대로 이곳저곳 누비고 다녀볼까?’하고 마음을 먹었다면 탁월한 선택이다.
제주에 올때마다 오조리를 찾아온다는 2008년 노벨문학상 르 클레지오와 연세를 얻고 틈날 때마다 내려와 사는 이병률작가와도 안목이 동급이다. 최근에는 서양화가이며 정크아티스트인 홍석열 작가가 기여이 둥지를 틀었다. 흰 장발에 날씬한 뒤태를 뽐내며 열일 중인 그를 만난다면 오조리 예찬에 가스라이팅 당할 수도 있다.
옛 어촌마을 그대로의 가옥과 돌담길 그리고 꾸벅 인사에 “어디서 와시냐?”하며 반겨주는 사람들, 오조리는 제주다움을 간직한 귀한 마을이다.
“제주에 와시난 오조리 한 번 가 보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