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미의 여행 테라피] 온몸이 초록초록해지는 곳. 서귀포 ‘치유’의 숲 

- 길을 걷다 불쑥불쑥 만나는 제주어 안내판 - 해녀들이 물질할 때 내뱉는 숨소리, 숨비소리 - 해설사와 함께 탐방하는 궤영숯굴보멍(해설)도 흥미로워

2024-09-21     이동미 기자
총면적
[파이낸셜리뷰=이동미 여행작가] ‘치유’ ‘힐링’ ‘ 웰니스’…. 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운 시대다. 의욕이 떨어지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현대인에게 ‘치유’는 단비 같은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제주에 ‘치유’라는 이름이 들어간 숲이 있다. ‘서귀포 치유의 숲’이다. 이 숲을 거닐면 치유된다는 뜻일 터, 정말로 치유가 될까 하는 궁금함에 불신감도 살짝 올라오지만, 호기심이 한 방울 더해진다.  편백, 삼나무, 붉가시나무, 동백나무….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육지의 숲과 별반 다르지 않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듯도 하다. 그쯤에서 눈에 들어오는 숲길 안내판. 육지에서는 볼 수 없던 제주어가 붙은 길 안내판은 일상의 공간으로부터 거리감을 증폭시킨다. 
숲길을
현무암
숲속을
서귀포 치유의 숲 탐방코스 중에 가베또롱은 ‘가뿐한’ ‘가벼운’이란 뜻이고 벤조롱은 ‘산뜻한’ 이란 뜻이며, ‘오고생이’는 ‘있는 그대로’란 뜻의 제주어다. 안내판에 쓰인 글씨를 보고 나름 짐작해본 단어의 의미가 한참을 빗나간다. 쉼팡, 오멍 등 예측되는 단어도 가끔 있다. 길을 걷다가 불쑥불쑥 만나는 제주어는 무언지 모를 내면을 살짝살짝 자극한다. 4코스의 이름은 ‘숨비소리’다.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물 밖으로 나와서 내뱉은 숨소리를 의미한다. 생사가 오가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잠시 하늘을 마주하며 거친 숨을 골랐을 숨비소리는 치열한 제주 여인의 삶을 대변한다. 붉가시나무 군락을 거닐며 치열한 제주 여인 같을 수도 있었던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숨비 같은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뜻일 것이다.  숲은 바라만 보아도,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뒷짐을 지고 숲 사이를 거닐다 말을 걸어오는 나무가 있으면 나무와 이야기하거나, 귀를 대고 나무의 소리를 듣는다. 두 손을 맞잡듯 나무와 손을 잡고 허리를 쭉 편 상태에서 쭉쭉 뻗은 나무줄기를 따라 눈길을 옮기면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척추가 편안할 것 같은 S자 곡선의 나무 의자에 누워 잠시 눈을 감고 새소리를 듣다가 깜빡 잠이 들기도 한다.
숲속
산림치유지도사는
서귀포 치유의 숲은 자유롭게 숲을 탐방하는 자율탐방뿐 아니라 해설사와 동행하며 숲길을 탐방하는 궤영숯굴보멍(해설)이 있고, 산림치유지도사와 함께 하는 산림치유 프로그램도 있다. 산림치유는 숲에 존재하는 다양한 환경요소를 활용해 인체 면역력을 높이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활동을 말한다. 산림치유지도사는 숲속에서 경직되었던 몸을 이완시키고 명상을 하거나 다담, 족욕 등을 통해 산림치유가 더욱 효과적으로 되도록 도와준다. 서귀포 치유의 숲은 숲속 스트레칭, 오감 열기, 걷기 명상, 해먹체험. 아로마테라피, 차테라피, 족욕, 바디스캔 등 산림치유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해설사와 함께 숲을 탐방하는 궤영숯굴보멍도 흥미롭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왕모시풀 잎 하나를 따서 반으로 접고 다시 삼등분으로 접는다. 입 안에 넣고 딱딱딱 이빨로 부딪친 후 펴보면 풀잎에 아름다운 문양이 나타난다. 사람마다 치아의 배열과 구조가 다르기에 풀잎의 문양도 모두 다르다.  가늘고 긴 풀잎 하나를 뜯어 풀피리도 불어본다. 입술을 살짝 떼는 것이 포인트, 너무 세지 않게 불어야 소리가 난다는 꿀팁도 알려준다. 너도나도 유치원 어린아이처럼 풀피리를 시도한다! 0.1초라도 소리가 나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고, 피식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도 깔깔깔 웃음소리가 숲이 퍼진다. 숲에 오니 지친 일상의 모습은 바람결에 날아가 버린다. 버거운 페르소나를 내려놓고 별것 아닌 것에도 자기 규제 없이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왕모시풀
숲속
배리어프리(Barrier-free)
웃으며 놀다보니 궁금해진다. 이것이 치유인가? 시속 100km로 달리면 1분밖에 걸리지 않는 1.6km의 코스를 두 시간씩 걷는 것이 치유인가? 물리적이고 의학적이고 외부적인 주체에 의한 ‘치료(治療)’와 달리 스스로의 에너지와 잠재력, 내부적인 힘으로 불편감을 이겨내는 치유(治癒)는 심리적 마음가짐과 연관성이 많다.  초록을 보며 걷고, 깊게 심호흡하면 회색빛이던 몸이 초록초록해진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를 듣고, 알 수 없는 제주어를 만나며, 울퉁불퉁 현무암과 콩짜개 덩굴까지 눈길 주며 걷는 것이 치유인가 보다.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지 않아도 숲에서의 활동은 심리적 안정감을 높여 우울감과 스트레스호르몬(Contosol)을 감소시키고, 노화 지연 멜라토닌 체내 농도는 증가시킨다는 학술 데이터가 있다. 면역력을 높이는 NK세포와 뇌에서 발생하는 알파(α)파가 증가한다는 것을 보면 뾰족했던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 같다. 디지털이 이만큼 나아가면 아날로그로 저만큼 받쳐주어야 중립이 되나 보다. 치유는 이따금씩 ‘빠름’을 역주행하는 것인가보다.  치유의 숲에는 곳곳에 쉼팡이 있고 ‘세상에서 제일 쾌적하고 조용한 숲을 만들어 달라’는 안내문이 있다. 끈 있는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어야 하고 핸드폰, 음악, 라디오 소리는 최대한 작게, 일행과의 대화 소리는 소곤소곤, 귤껍질, 달걀 껍데기, 껌 등 쓰레기는 버리지 않아야 한다. 당연하고 또 지켜야 할 방문객의 예의다. 그래야 지치고 힘든 누군가가 와서 치유하고 갈 테니까 말이다. 

치유의 숲 방문 정보

도토리거위벌레가
∙서귀포 치유의 숲은 예약제로 운영되고 하루 600명으로 탐방 인원을 제한한다. 산림치유 프로그램은 한 회차에 10명, 궤영숯굴보멍은 15명이다.  ∙휠체어 혹은 유모차 방문객에게는 목재 데크가 놓인 노고록무장애나눔길을 추천한다. 노고록은 ‘편안한’을 뜻하는 제주어로 방문자센터에서 쉼팡2까지 구간이다. 폭 1.2m, 경사로 5~8%, 총거리 870m다. 40℃의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는 대자연 속 족욕이 하이라이트다. ∙서귀포 치유의 숲. 주소 제주 서귀포시 산록남로 2271. 문의 064-760-30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