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장원제, 십자군전쟁 그리고 흑사병

2023-10-05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중세유럽은 라티푼디움으로 불리는 장원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것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중세유럽은 고대 로마가 붕괴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장원제가 이뤄졌다. 그러면서 농업 혁명도 이뤄졌다. 우선 따뜻해진 기후, 그에 걸맞는 기술혁신, 새로운 윤작 체계 등이 중세 유럽의 농업을 지탱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농기구의 발달과 소를 이용한 경작 등이 농업 생산성 향상을 일궈냈다. 특히 철이 흔해지면서 농기구의 재료가 쇠로 대체되면서 그에 따라 농업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와 더불어 물레방아와 풍차 등을 이용하게 되면서 밀가루 생산과 농기구의 발달이 더욱 가속화됐다. 이것이 11세기 중반이 되면서 유럽 농업 생산을 더욱 증가시키게 만들었고, 이것은 곧 인구의 증가로 이어졌다. 인구의 증가는 곧 농업 생산성의 향상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장원을 기반으로 한 영주들의 힘이 커지게 됐다. 그것은 새로운 정복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십자군 전쟁으로

농업생산력은 인구의 증가로 이어지게 됐다. 문제는 생필품의 생산 대부분을 비잔티움이나 이슬람 상인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생필품은 늘 부족했고, 그 부족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아시아(현 튀르키예)와 예루살렘의 정복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종교적 신념을 내세운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게 됐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면서 전쟁물자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급격한 도시화가 이뤄지게 됐다. 급격한 도시화는 인구의 밀집현상이 발생하게 됐다. 기존 농노제에서는 인구가 증가해도 인구 분산 현상이 있었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구는 도시로 몰리게 됐다.

흑사병의 유행

14세기 흑사병의 유행은 중세유럽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변화를 초래했다. 흑사병의 원인으로 쥐떼를 제목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구의 증가와 급격한 도시화이다. 실제로 인구 밀집도가 떨어진 지역에서는 흑사병의 피해가 적었다. 12세기부터 13세기 유럽에서는 인구가 급격히 성장했지만 농업생산량이 따라잡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작지는 한정적인데 반면 농업생산량이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되면서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흑사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유산을 상속받는 사람이 한정되게 되면서 엄청난 상속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됐고, 이것이 훗날 자본가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게 됐다. 이는 농노제가 붕괴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그것은 중세유럽의 종언을 알리는 것이었다. 즉, 농노제보다 자유농민을 유지하는 것이 토지를 소유한 봉건영주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득이 되게 되면서 13세기 들어 영주가 현금을 받고 농노를 해방시켰다. 즉, 평생 토지에 얽매여 살게 하는 농노제보다 자유농민을 통해 경작을 하게 하는 것이 영주들 입장에서는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방된 농노는 훗날 산업혁명 시기에는 공장 노동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