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야스쿠니 신사
2023-10-18 어기선 기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867년 에도막부가 끝나고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면서 일본 국왕의 권한이 막강해졌다. 하지만 내부적인 갈등은 계속 표출되면서 1868년 무진전쟁이 일어났고, 사실상 일본 국왕이 통치하는 그런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면서 일본 국왕은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죽은 영혼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위령시설을 세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때부터 야스쿠니 신사가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국가신토’가 제도적으로 사라지면서 야스쿠니 신사는 민간종교법인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사자들을 위로하는 기능은 유지했다. 아울러 종교분리 원칙에 의해 일본 정부와는 거리를 두는 방식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연립정당이면서 보수정당인 자민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사적으로 참배하는 것은 물론 일본 우익들이 야스쿠니 신사와 결탁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다.정상적인 추모시설 없으면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를 하면서 정상적인 추모시설이 없으면서 야스쿠니 신사가 그것을 대체해왔는데 민간종교법인을 내세우면서 일본 우익과 결탁을 하면서 전쟁점죄자도 합사를 하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만약 정상적인 추모시설을 만들었다면 전쟁범죄자가 합사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민간종교법인 시설이기 때문에 연간 20억엔에 달하는 운영자금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아무런 검증 없이 무조건 합사부터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야스쿠니 신사가 만들어졌을 메이지 유신 당시에는 결국 일본 국와에 대한 충성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것이 제국주의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그 제국주의 유물이 계속해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일본 우익과 연결되면서 재정적인 연결고리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일본 내에서도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전쟁범죄자를 제외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한 군인 중에 제국주의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을 따로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들 유족들 역시 제국주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신사가 고인의 추모를 본질로 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들을 영웅적 행위로 미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