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소동파 ‘고려금수론’

2024-10-24     어기선 기자
중국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고려금수론’을 꺼내들었다. 1089년 11월 3일 ‘고려의 진상에 대해 논하는 상소문’에는 ‘고려는 상종 못할 오랑캐’ 또는 “고려가 16~17년 간 조공을 바쳐왔습니다. 그런데 고려 사신들을 접대하고 답례품을 하사하는 비용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성을 쌓고 배를 만들고 관사를 짓느라 각 지방의 백성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고 밝혔다. 그만큼 고려의 조공무역에 대한 송나라 사람들의 시선이 담겨 있다. 조공무역하면 흔히 굴욕적인 외교라고 할 수 있지만 고려시대 조공무역은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송나라 연호 쓰지 않아

소동파가 지적한 내용에는 고려 사신이 송나라 연호를 쓰지 않았다. 명목상 조공국인데 송나라 연호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고려사신은 자국을 자주국으로 판단했다. 송나라 사신이 고려 개경에 왔을 때 가져온 금은 중에는 가짜가 있다는 첩보가 있자 송나라 사신 면전에서 일일이 개봉했다. 송나라 사신은 아무 항의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고려 사신이 송나라 개봉에 도착했을 때 조공품을 가져왔는데 허접한 물품이었다. 그런데 하사품은 10배 이상이고, 사절단이 들고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이에 개봉이나 항주에서 팔아버리고 금은으로 바꿔 개경으로 돌아갔다. 고려 사신은 송나라 조정에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했고, 송나라는 그것을 들어줘야 했다.

여요전쟁 때문에

이처럼 고려 사신이 송나라에서 이른바 갑질을 한 이유는 고려-거란 전쟁 때문이다. 송나라가 거란과의 전쟁으로 힘겨울 때 거란이 고려를 침공해왔다. 이때 서희와의 담판 등으로 강동 6주를 획득하고, 2차 고려-거란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었고, 3차 때는 귀주대첩에서 고려가 대승을 거두면서 고려가 동아시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 고려-거란 전쟁이 고려의 승리로 끝나면서 고려-송나라-거란의 관계는 비등한 관계가 됐고, 송나라를 침략하려는 거란이나, 거란의 침략을 방어해야 하는 송나라 입장에서는 고려를 우군으로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이에 고려 사신이 갑질을 해도 아무 항의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고, 고려-거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소동파의 입장에서 고려 사신들이 거만할 수밖에 없으니 ‘고려금수론’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