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유모차 그리고 유아차

2024-11-08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소라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일 열린 제321회 정례회 보건복지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성평등 언어사전에 따른 평등용어 사용 및 시정’을 주문함녀서 ‘유아차’를 언급했다. 이 의원은 성루시 여성가족정책실을 상대로 한 행정감사에서 유아차 보관소가 아직도 ‘유모차 보관소’로 기재돼 있다면서 양성평등 문화를 확산시키는데 선도적으로 노력을 해야 할 여성가족정책실이 즉각 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아차는 영국으로부터

유아차는 어린아이를 태워서 밀고 다니는 수레로, 과거에는 유모차라고 불렀다. 오늘날 형태의 유아차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1733년 영국인 윌리엄 켄트이다. 원래 조경 디자이너로 정원뿐만 아니라 여성 의류 또는 가구까지 디자인 했었다. 그런데 어떤 공작은 자신의 아이들을 즐겁게 해줄 것을 디자인 해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아기가 앉을 수 있는 조개 모양의 탈것을 만들었다. 이런 유아차는 부자들의 최신 장난감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디자인에 변화가 생기면서 손잡이가 추가됐고, 사람이 밀 수 있게 됐다. 그런데 1840년대 빅토리아 여왕이 러드게이트 힐 히칭스 아기용품점에서 유아차 3대를 구입하면서 유아차가 큰 인기를 얻게 됐다. 1889년 윌리엄 H. 리처드슨이 손잡이를 자유자재로 회전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고안하거나 바퀴 축을 개량해 각 바퀴들이 개별적으로 회전을 할 수 있게 하면서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1960년 소비의 시대 맞이해

유아차가 젊은 엄마들의 필수품이 된 것은 1960년대 들어와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영국은 그야말로 황폐화되면서 경제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성장률이 상승하면서 덩달아 중산층 가정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영국 주부들은 쇼핑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아차는 빠르게 필수템이 됐다. 또한 런던 리젠트 공원을 유아차를 끌고 여유롭게 거니는 모습이 당시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로망이었다. 이에 젊은 엄마들에게 유아차는 ‘육아의 자유’와 함께 ‘과시욕’이 투영된 상품이었다.

왜 유모차였는가

유아차를 과거 유모차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일본에서 넘어온 ‘단어’였기 때문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유아차가 일본에도 전파가 됐는데 워낙 고가의 제품이다보니 귀족들이 애용을 했다. 그러면서 귀족들 사이에서 유아차는 ‘유모’(乳母 : 젖어미)가 끄는 수레로 생각을 했다. 일본 귀족들에게는 갓난아기에게 그 어머니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 길러 주는 여자인 유모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유모가 아이의 육아를 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모가 끄는 수레라고 해서 ‘유모차’라고 물렀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파되면서 ‘유아차’를 ‘유모차’라고 부르게 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왔다. 하지만 ‘유모차’라는 단어에서 ‘어미 모(母)’가 들어가면서 그에 따라 여성이 육아를 독박 담당하는 것으로 비쳐지면서 양성 평등에 위배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되면서 ‘유모차’ 대신 ‘유아차’라고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