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뷰] ‘슈링크플레이션’ 통제의 풍선효과?…제조사는 억울하다

2024-11-17     박영주 기자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식품 물가가 거침없이 치솟으면서, 일부 업체들을 중심으로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고 양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나 품질을 떨어뜨리는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 상반기 식품업체들을 상대로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주문한데 이어 하반기에는 가격통제에 못이겨 제품 용량을 슬쩍 줄인 업체들을 겨냥해 ‘양도 질도 줄이지 말라’고 질타하고 나섰다. 일부 원재료의 경우 가격이 최대 5배나 뛰어올랐음에도 업체에만 고통을 떠넘기는 형태에 말들이 많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외쳤던 윤석열 정부가 ‘통화정책’이 아닌 ‘행정력’으로 물가를 잡는 행태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지금의 방식은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 한꺼번에 물가가 인상되는 부작용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물가정책이 어디까지나 ‘총선용’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식품업계 내에서는 “억울하다. 너무 힘들다”는 불만이 계속되고 있다. 어려웠던 코로나 시기를 지나 이제야 매출‧영업이익 등에서 실적이 나오고 있고, 그마저도 어려운 업체들이 수룩한데 ‘원재료 값이 하락했으니 가격을 내리라’는 요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슈링크플레이션이나 스킴플레이션 등 양질을 떨어뜨려 소비자들이 제품에 보내준 신뢰를 깨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업체들도 오죽하면 그러겠나’라는 안타까운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연합뉴스

슈링크플레이션‧스킴플레이션, 어쩌다 시작됐나
식품업계의 속사정 “안 오른게 없다. 너무 억울해”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은 인색하게 아낀다는 뜻의 ‘스킴프(skimp)’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재료나 서비스 등에 들이는 비용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양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을 넘어 질을 줄이는 스킴플레이션은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교묘한 형태의 가격인상으로 불린다.  실제로 풀무원은 최근 제품 가격은 유지하면서 기존에 한봉지 당 5개가 들어있던 핫도그 양을 4개로 줄인 것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농심의 과자, 동원F&B의 양반김과 참치캔, 해태 고향만두도 용량이 줄었다. 양 대신 질을 줄인 업체들도 있었다. 롯데칠성음료는 오렌지주스의 과즙함량을 100%에서 80%, 80%에서 45%까지 줄였으며 치킨브랜드 BBQ 역시도 기존에는 100%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을 사용했지만 10월4일부터 올리브유와 해바라기유를 반반씩 섞은 ‘블렌딩 오일’로 교체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은 그대로인데 내용물이 줄어들거나 바뀌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업체들도 할 말이 많다. 실상은 그게 아닌데 너무 억울한 측면이 많다는 항변도 있었다. 이에 본지는 식품업계에 종사하는 다양한 관계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연합뉴스
A사 관계자는 “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원재료값 뿐만이 아니다. 전기‧가스 등 에너지 비용도 있고 인건비에 물류비까지 안 오른게 없다”며 “선물가격(CBOT) 기준의 밀 국제가격이 하락했다는데 제조사들이 밀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게 아니지 않나. 밀가루 제조사들로부터 가공된 밀가루를 납품받는데 아무리 밀 국제가격이 하락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바로 적용되는게 아니다.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데 소비자단체를 자극시키는게 과연 맞는지. 마음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소비자단체 등에서는 식품업계 일부 업체들이 매출원가율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인상을 한다며 지적하는데, 사실 제조원가 비중이라는 것은 사실 매출액 대비 제조원가가 얼마인지에 대한 비율(%) 개념이다. 많이 팔아서 매출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비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제조사들의 경우 어떤 특정 포인트를 넘어가면 고정비 감소효과가 나타나는데 매출액이 늘어난 비중에 비해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나는 이유는 그것에 있다. 많이 남겨 먹었으니까 가격 인하해라 이렇게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C사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우리 K-푸드기업 수출 잘한다 대견하다 해놓고는 또 다른 쪽에서는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겠다고 한다. 기업들로서는 당황스럽다”며 “밀‧팜유 국제가격이 하락추세면 뭐하나. 설탕‧카카오‧전분‧오일 가격이 역대급이다. 올리브오일만 하더라도 5배가 올랐다. 전분가격도 역대급이다. 과자나 라면 만드는데 밀가루만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원재료 하나 가격 떨어졌다고 제품 가격 내리라는 식은 말이 안되는 것”이라 귀띔했다. D사 관계자는 “용량을 줄이고 질을 낮추는 것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고객들이 제품을 믿고 구매해주셨는데 내용물을 바꾸는 거니까 잘못한게 맞다. 하지만 소비자분들께서도 식품업계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한번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며 “회사도 직원들 월급은 줘야지 않나. 이대로 가면 용량이나 질을 줄이는게 아니라 사람을 줄여야할 판”이라 호소했다.
추경호

尹대통령 마트 가자 국무위원들 앞다퉈 마트행
‘통화정책’ 대신 MB식 물가잡기…스테그플레이션 우려도

정부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가격을 올리지 말라며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에 비용부담으로 몸살을 앓는 기업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격에 대한 지나친 통제가 풍선효과로 작용하며 슈링크‧스킴플레이션을 불렀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현 정부에서는 부정할지 몰라도 식품업계가 받아들이는 윤석열 정부의 물가정책 방향성은 ‘누르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모습이다. 

10월31일 윤석열 대통령 “물가와 민생안정을 모든 정책의 최우선에 두고 총력대응 하겠다”
11월14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슈링크플레이션은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11월16일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꼼수다. 우선 소비자단체가 나서야 한다”
11월17일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신고센터를 통해 제보를 받겠다”

정부 관계자의 말은 실무자급으로 가면 갈수록 구체적이고 단호해졌으며 말 뿐만이 아니라 행동도 이어졌다.  하나로마트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부터, 마포농수산물 시장을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 이마트 용산점을 찾은 추경호 부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이 물가를 살핀다는 명목하에 직접 현장을 찾았다.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대전 홈플러스를,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서울 동작구의 주유소를 찾았다. 기업들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행태는 약 12년 전 대표적인 실패정책으로 결론난 ‘MB식 물가 관리제’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실제로 식품업계 내에서는 ‘빵 사무관’에 이어 ‘커피 주무관’, ‘과자 사무관’, ‘치킨 주무관’, ‘우유 서기관’까지 줄줄이 등장할 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물론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제품 내용물을 변경하는 것은 소비자들이 기업에 보내준 ‘신뢰’를 져버리는 행위로, 결코 칭찬받을 수 없다.  하지만 시장원리에 역행하는 과도한 가격통제는 결과적으로 슈링크플레이션‧스킴플레이션 같은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만큼, 정부의 물가정책이 풍선효과로 작용했다는 전문가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가 금리 인상을 하지 않으면서 물가상승 등의 부작용이 연쇄적으로 터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압박에 눈치를 보는 기업들이 추후 한꺼번에 가격인상에 나서게 되면 물가는 오르면서 경제성장은 침체로 접어드는 ‘스테그플레이션’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며, 실효성이 떨어지는 물가 핀셋조정 대신 통화정책을 통한 물가안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