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27일 십자군 전쟁 선포

2024-11-27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095년 11월 27일은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 전쟁을 천명한 날이다. 7차 원정까지 대략 200년 간 이어졌고, 중세유럽의 변곡점이 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은 중세유럽이 변화하고, 그에 따라 근세유럽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다만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1071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 로마노스 4세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의 술탄 알프 아르슬란에게 대패한 뒤부터이다. 즉, 예루살렘이 이교도에 넘어갔다는 것이 그 이유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배경이 있다.

이슬람의 팽창

예루살렘이 이교도에게 넘어갔다는 것은 종교적으로도 문제가 있지만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동아시아의 물자가 실크로드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흘러들어오고, 그것이 유럽으로 전파가 됐다. 그런데 이교도에게 넘어갔다는 것은 그만큼 물자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소아시아를 통해 서구 유럽으로 전파하는 과정도 있지만 그것 역시 거리가 상당히 멀고, 시간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점령이 서구유럽에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울러 동로마제국 자체가 이교도의 영향력 하에 있기 때문에 서구유럽으로서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교황청의 확대

또 다른 이유는 교황청의 권한 확대와도 연결이 된다. ‘가톨릭’과 ‘정교회’ 간의 갈등 속에서 동로마제국이 이교도에 의해 축소가 되면서 가톨릭의 권한이 확대되는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이와 더불어 십자군 원정은 소요기간이 굉장히 길었고, 돌아올 가능성이 낮았다. 이에 교황과 사제들이 원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재산을 위탁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수도권들은 영주들이 비해 효과적으로 땅을 관리하고 운영할 줄 알았기 때문에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교황청을 중심으로 수도권들에게 재산을 위탁 관리했다. 이것은 교황청의 재산 확대에 기여를 했고, 재산의 확대는 권능의 확대가 되면서 카놋사의 굴욕과 같은 교황의 권위가 크게 향상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영지를 관리하던 영주가 십자군 전쟁에 참여를 하면서 해당 영지에 대한 지배권이 교황이나 수도원에 넘어가게 되면서 그에 따라 봉건왕조의 권한은 약화되고, 그것은 결국 봉건왕조의 몰락과 함께 부르주아의 성장을 만들었다. 봉건왕조가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 도시의 상공인들과 손을 잡아야 했고, 그러면서 부르주아의 성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부르주아와 결탁한 봉건왕조는 근대왕조로 서서히 변화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