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30일 서울전차 폐지
2024-11-30 어기선 기자
대한제국 근대화의 상징
대한제국이 전기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부대사업으로 도입된 것이 서울전차이다. 이에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한성전기회사를 만들어 전차 부설 등을 검토했다. 그 이유는 고종 황제가 홍릉 행차를 할 당시 많은 시간과 재정 낭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전차 도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898년 9월 15일 개설 예식을 거행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1899년 5월 20일 개통식을 갖고, 정식 운행을 시작했다. 최초 구간은 경고-종로-흥인지문-보제원-청량리(홍릉)으로 8km였고, 전구간 단선이었다. 서울전차 개통은 아시아에서 여섯 번째이고, 수도에서 부설된 것은 세 번째이고, 독립국 수도만 따졌을 때 두 번째이며, 서울이 도쿄보다 이르다. 서울전차가 개통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이에 시골에서도 서울전차를 구경하기 위해 상경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하지만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하면서 조선 백성들 사이에서는 ‘불꽃괴물’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에 한때 운행이 중단되기도 햇다.일제강점기가 되면서
그러다가 1909년 일한가스주식회사에 매각됐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들어갔다. 일제강점기에서는 대대적인 투자를 벌이면서 복선화하거나 노선을 늘리기도 했다. 다만 조선 백성들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다. 조선 백성들이 거주하는 서대문이나 마포는 운임을 비싸게 불렀다. 이에 조선 백성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 1920년대 서울 과밀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서울전차 교통난이 발생했고, 이에 버스 운행을 본격화했다. 그러다보니 버스와 서울전차의 운행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발생했다. 다만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 일본이 더 이상 서울전차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차량과 노선의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됐다.해방 이후 자동차 보급 증가에 의해
해방이 되면서 경성전기주식회사의 운영권이 한국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기술자가 없었기 때문에 노후화된 차량과 노선을 복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1960년대 들어와서 자동차 보급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에 따라 서울전차와 자동차 간의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또한 교통난이 가중됐다. 이에 1966년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지하철 건설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전차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1968년 11월 30일 자정을 기해 서울시에는 더 이상 전차가 달리지 않게 됐다. 전차가 달리지 않게 되면서 아쉬움을 노래로 담았는데, 그 노래가 바로 ‘마포종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