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2월 4일 갑신정변 발발

2024-12-04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84년 12월 4일은 갑신정변이 발발한 날이다. 갑신정변은 김옥균을 중심으로 급진개화파가 서구식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문제는 일본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아울러 일본의 배신으로 인해 결국 삼일천하로 끝난 사건이다.

조선 변혁 꿈꿔

구한말 봉건 체제의 틀을 깨뜨리고 자본주의 및 근대화로 나아가고 싶어 했던 급진 개화파들(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서재창, 이규완, 유혁로, 정난교, 신응회, 박영교)이 정변을 일으켰다. 열혈 엘리트 청년들이 자신들은 개화당으로, 다른 모든 세력을 수구당으로 불렀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면서 조선은 청나라의 영향력에 놓이게 됐다. 그러면서 개화당은 청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개화의 길에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일본 세력과 손을 잡고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개화파는 급격히 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위안스카이에 청군 파견을 요청했고, 일본 공사는 창덕궁에 주둔한 일본군을 철수시켰다. 일본은 일본 공사관이 불에 탔다면서 조선 정부에게 배상하라면서 군함 7척을 동원해 무력시위를 해서 한성조약을 체결했다.

갑신정변에 대한 평가

갑신정변은 개화를 앞당기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오히려 개화를 더 늦추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왜냐하면 일본을 끌어들여서 개화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에 ‘개화하자는 사람들은 죄다 외세를 끌어들여서 반역하는 사람들’이라는 평가가 나돌았다. 즉, 개화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개화 정책의 추진이 늦어지고 대대적인 개혁은 1894년 갑오개혁에 가서야 불완전한 형태로 이뤄지기는 했다. 개혁의 방향은 옳았을지 모르지만 개혁의 수단으로 일본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