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백곰 미사일 사업

2023-12-06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백곰 미사일 사업은 박정희 정부 당시 무기 국산화와 관련된 사업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사거리 70km 어네스트존 로켓 대신 미국에 사거리 120km MGM-52 랜스 지대지 로켓의 판매를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는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이라 미사일 판매를 거절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국방과학연구소를 통해 미사일, 로켓과 관련된 연구 개발을 진행하면서 우리나라가 운용 중인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국산화 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것이 바로 백곰 미사일 개발 사업이다.

상당한 진전 보여

백곰 미사일은 발사시험에 성공하는 등 사업진척을 보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기술은 M16 소총을 생산할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피와 땀이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백곰 사업이 한국에서 진행되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만큼 연구원들의 보안이 철저했다. 실제로 안전가옥에서 숙식하면서 연구를 진행했고, 연구원 가족들을 초청해서 엄포를 놓았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백곰 사업과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무궁화 프로젝트’에 대해 간파를 하면서 한국 정부가 ICBM과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1977년 해당 문제가 대두됐고, 우리 정부의 끈질긴 설득으로 사거리 180km, 탄두중량 1000파운드로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을 1979년에 체결했였다.

금성정밀이 주도

다만 백곰 미사일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실제 제품을 기업에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실패 확률이 높고 수익이 나지 않았던 것이 군수사업이기 때문에 기업체들이 뛰어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기업체로서는 수익을 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미사일 제작을 할 수 있는 업체를 만들도록 했는데 바로 ‘금성정밀’이고 오늘날 LIG넥스원이다. 당시 부품을 구하지 못해서 청계천에서 부품을 구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청계천을 한바퀴 돌면 미사일도 만든다는 우스개 말이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12.12 군사반란 이후

이런 백곰 사업은 전두환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으로 실권을 잡은 이후 취소가 됐다. 단순히 사업만 취소를 시킨 것이 아니라 국방과학연구소 내 미사일 관련 연구자들도 대거 자리를 물러나게 했다. 아무래도 전두환 신군부가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게 되면서 그에 따라 미국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다보니 백곰 사업을 취소하는 것은 물론 국방과학연구소 내 미사일 관련 연구자들도 대거 자리를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으로 국무위원 1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됐다. 이에 백곰 사업을 재추진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