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경제리뷰] 메두사호의 뗏목
2024-12-11 어기선 기자
실제 있었던 사건
메두사호의 침몰은 1816년 7월 2일 아프리카 서안 브롱곳 50km 해상에서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가 암초에 걸려 침몰한 사건이다. 메두사호는 1810년 건조됐다. 당시 패전으로 국민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황 속에서 식민지 개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세네갈로 떠나는 배였다. 이에 국민적 관심이 뜨거웠다. 이에 루이18세는 메두사호에 보급선 등 3척을 딸려 보냈다. 하지만 45살 쇼마레 선장이 승선 경험이 부족했지만 왕당파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로 선장이 됐다. 선장이 되기 위해 돈을 썼기 때문에 쇼마레 선장은 뒷돈을 받고 사람을 더 태웠다. 이에 정원이 326명인데 400명이 넘게 탔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연안에서 속도를 냈고, 결국 암초를 만나서 난파를 했다. 문제는 정원보다 많은 인원을 태웠기 때문에 구명정이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이에 고귀한 신분은 구명정 6척에 먼저 태웠다. 나머지 사람들은 메두사호가 파선되면서 나뭇조각이 바다로 흘러나가자 길이 20m, 폭 7m짜리 대형 뗏목을 급조했다. 그런데 쇼마레 선장은 뗏목을 연결한 구명정 속도가 나지 않자 로프를 끊어버렸다. 즉, 뗏목은 표류를 할 수밖에 없었고, 159명이 탄 뗏목에서는 격랑에 몸을 맡겨야 할 양쪽 가장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중앙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고, 결국 인육까지 먹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생존자는 15명만 남았고, 발견된 이후에도 5명이 죽으면서 결국 10명만 살았다.관직 사고파는 관행에 대한 비판 여론
프랑스 왕실은 사건 자체를 숨기려고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사건이기 때문에 결국 세상에 공개될 수밖에 없었다. 매관매직에 대한 분노가 치솟게 됐고, 이에 28살 화가 테오도를 제리코는 1819년 대작 ‘메두사호의 뗏목’ 작품을 남겼다. 해당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그 분노가 더욱 치솟을 수밖에 없었고, 이에 부르봉 왕가는 1830년 무너졌다. 부르봉 왕가가 무너지게 한 결정적인 것은 메두사의 뗏목 작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작품은 1830년 부르봉 왕가가 몰락한 7월 혁명을 그린 작품인데 그 그림의 구도가 ‘메두사의 뗏목’ 작품을 차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