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동대문야구장 폐장

2024-12-18     어기선 기자
동대문야구장./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2007년 12월 18일은 동대문 야구장이 폐장한 날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함께 한 운동장이면서 우리나라 아마 야구의 성지이기도 하다. 프로야구가 탄생하면서 아마야구의 전성시대가 몰락하게 됐다. 이로 인해 동대문 야구장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결국 철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 훈련원 자리

동대문 야구장은 조선시대 훈련원이 있었던 공터였다. 개화기 당시인 1905년 해당 공터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야구경기가 열렸다. 그러다가 19825년 경선운동장이 완공되면서 야구장도 함께 완공됐다. 해방 이후 동대문 야구장은 한국 야구의 메카가 됐다. 그리고 1958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한 후 대회를 열기 위해 1956년부터 확장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대회 개최권을 반납했다. 1963년 제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박정희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서울운동장(동대문 야구장)에 조명 시설을 설치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면서 야간 경기가 가능한 최초의 경기장이 됐다. 그러면서 프로야구 출범 전까지 아마 야구의 중심지가 됐다. 이에 한국고교야구 대회인 대통령배, 청룡기, 봉황대기, 황감사자기 등이 열렸고, 한국실업야구 대회 및 대학야구 그리고 백호기 등이 열렸다. 특히 고교야구는 표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을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프로야구 출범하면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개최 당시 잠실운동장이 서울종합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동대문 야구장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그리고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MBC 청룡이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또한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리기도 했다. 다만 MBC 청룡이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홈을 옮기면서 동대문 야구장은 아마추어 전용 야구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동대문 야구장이 수익이 나지 않게 됐다. 이에 유지비 조달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1993년 11월 서울시의회는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시청사를 이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현 위치에 신 청사를 세우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동대문 야구장은 서울의 골칫거리로

아마야구도 사양길로 들어서면서 동대문야구장은 서울시의 골칫거리가 됐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모든 후보들이 동대문 운동장 철거와 재개발을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06년 서울시장에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공약인 디자인플라자 계획의 부지로 동대문야구장 일대가 지목됐다. 체육계와 야구계가 반발했지만 2006년 10월 동대문야구장의 철거가 결정됐고, 그해 12월 18일 철거가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