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바나나

2023-12-19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우리나라에서 한때 바나나는 비싸고 귀한 과일로 여겨졌다. 바나나를 먹는다는 것은 집이 상당히 부자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나나는 부의 상징이었고, 비싼 음식이었으며, 자녀가 만약 병원에 입원하는 등 가족이 아플 경우에만 환자에게 먹일 수 있는 과일이었다.

이기붕 집에 바나나 있었다

바나나와 얽힌 일화로는 1960년 4.19 혁명 당시 부통령 이기붕 일가가 자살한 후 그의 자택에 들어가 본 사람들이 집에 냉장고가 있었고, 냉장고 안에 바나나가 있었다고 증언을 했다.그만큼 바나나가 귀했다. 이런 이유로 바나나는 권력층이나 부유층이 먹을 수 있는 비싸고 희귀한 과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는 1980년대 3저 호황을 거쳐 중산층도 잘살게 됐지만 바나나를 먹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1990년대 초반 최저임금이 20만원대였는데 당시 바나나 한 송이의 가격이 1만원을 넘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바나나 한 송이가 사과 한 궤짝 정도의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바나나를 먹는다는 것은 연례행사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1970년대생 출생자 중에서도 어린 시절 바나나를 먹었다는 경험자가 많지 않았다. 만약 어린 시절 바나나를 먹었다는 경험자가 있으면 그 사람은 어린 시절 상당히 아팠다고 할 수 있다. 바나나가 귀했던 이유는 제주도에서 소량 재배했고, 동남아 등지에서 구상무역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구상무역이란 일정 기간 동안의 수출과 수입이 균형을 이루도록 두 나라가 협정하여 차액 결제를 위한 별도의 자금 지불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역 제도를 말한다. 그나마 그렇게 들어온 바나나는 군납 유출품으로만 거래가 됐다.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해

귀했던 바나나가 우루과이 라운드 무역협정으로 인해 1994년 파인애플과 함께 바나나 수입 자유화가 이뤄졌다. 이에 바나나 가격이 송이당 몇백원대로 폭락을 하면서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됐다. 이런 이유로 바나나는 한국 농업을 망치는 대표적인 외래농산물로 꼽히기도 했다. 이에 한때는 바나나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바나나가 국내에서는 재배가 거의 되지 않는 열대과일이기 때문에 한국 농업을 망치는 대표적인 외래농산물이라고 규정하기에는 억지가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점차 바나나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점차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바나나 재배 면적인 점차 늘어가고 있다. 특히 충청남도 태안군과 경상북도 포항시에서도 시험 재배에 성공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수입산 바나나와 국내산 바나나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