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월 3일 병자호란 발발
2025-01-03 어기선 기자
고려거란전쟁 반면교사 삼아
고려거란전쟁 특히 2차 고려거란전쟁을 청나라가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2차 전쟁에서 거란군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왔지만 흥화진을 점령하지 못하면서 강동6주 모두를 실제로는 점령하기 못했다. 물론 곽주성을 점령하기는 했지만 양규 장군이 탈환을 하면서 후방 병참기지를 확보하지 못한 채 거란군은 개성으로 입성해야 했다. 하지만 거란군에게는 몇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청천강의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거란군의 이동을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거란군은 기병 위주이기 때문에 말을 타고 이동을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주로 겨울에 침략을 하는데 그 이유는 강물이 얼었기 때문에 강을 쉽게 건널 수 있다는 점이다. 겨울에 침략하는 또 다른 이유는 거란이나 여진은 주로 ‘반농반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반은 농경을 하고, 반은 수렵을 한다는 점이다.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유목민들은 유목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즉, 거란이나 여진은 주로 겨울에 침략을 해서 약탈을 하고, 약탈한 물품으로 봄에 수렵이나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방목한다. 즉, 3월이 되면 거란군이나 여진군은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란군이 고려를 침략했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됐고, 결국 회군을 해야 했고, 회군하는 과정에서 양규 장군에게 대패를 당했다.청나라는 속전속결
이런 거란군의 2차 침입을 반면교사 삼은 청나라는 후방 병참기지도 만들지 않고 속전속결을 원했다. 이런 이유로 한양까지 한달음에 달려오고, 결국 남한산성을 에워싸서 인조를 무릎 꿇게 했다. 물론 청나라가 속전속결 전략을 선택한 것은 ‘반농반수’와 ‘겨울철 강물이 얼었기’ 때문도 있지만 명나라가 있기 때문에 속전속결을 원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주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