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남양유업, 이제는 홍원식 지우기
2025-01-04 박영주 기자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둘러싼 홍원식 회장 일가와 사모펀드의 분쟁이 사모펀드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홍원식 회장 일가가 50% 넘는 지분을 넘기면, 창업 이후 60년 만에 남양유업의 오너경영 체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법정 분쟁이 마무리되면서 기업 정상화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4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주식 양도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홍 회장은 지난 2021년 5월 회장일가가 보유한 지분 53.08%를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었다.
당시 남양유업은 자사 발효유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가 허위발표 논란을 빚었다. 이에 홍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자식에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지분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9월1일 홍 회장 측은 돌연 한앤컴퍼니가 SPA 계약 이행 전에 남양유업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하고,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홍 회장 일가 뿐만 아니라 한앤코까지 쌍방으로 대리를 했다며 변호사법 위반을 이유로 일방적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한앤컴퍼니는 당초 계약대로 남양유업 주식을 넘기라며 소송에 돌입했고,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한앤컴퍼니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홍 회장 측은 “이 사건 계약에 있어 원고 측의 합의 불이행에 따른 계약의 효력, 쌍방대리 및 배임적 대리행위에 대한 사실관계나 법리에 관한 다툼이 충분히 심리되지 못한 것 같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약 3년여간 이어진 소송전 끝에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면서 홍 회장 일가는 한앤컴퍼니에 지분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 일가의 주식을 취득하게 되면 남양유업 보통주 37만8939주로, 지분율 52.63%를 확보해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2021년 5월 SPA 계약 체결 당시 1주당 가격은 82만원, 거래금액은 3107억원으로 책정됐다.
업계에서는 소송전이 마무리됨에 따라 한앤컴퍼니가 새로운 경영체제 수립을 위해 지배구조 개선, 이사회‧주총소집 등 정상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이라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완전히 새로 태어나기 위해 사명변경 등의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남양유업 주가도 영향을 받고 있다. 4일 11시12분 기준으로 남양유업 주가는 전날 대비 2.72% 오른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홍 회장 일가의 패소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주식양도 관련 소송과는 별개로 한앤컴퍼니는 홍 회장을 상대로 남양유업에 경영권 이양 및 정상화 지연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5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불가리스에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던 것과 관련해 남양유업 전현직 임직원 4명과 남양유업이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남양유업은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지만 당시 질병관리청은 인체 대상 연구가 아니어서 효과를 예상하기 어렵다고 반박했고 식약처가 고발 조치에 나섰다.
1965년 설립, 60년 역사의 남양유업…어쩌다 여기까지
남양유업은 1964년 창업주인 홍두영 명예회장이 설립한 회사로, 분유사업으로 몸집을 키웠다.
1965년11월 충남 천안에 지은 제1공장을 시작으로 1967년 출시된 유아용 제조분유 ‘남양분유’가 히트를 치면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자랑했다. 과거 ‘우량아 선발대회’를 주관한 메인 스폰서가 남양유업이었다.
이후 90년대 들어 남양유업은 불가리스, 아인슈타인우유 등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홍 명예회장은 90년 4월 회사 최고경영자 자리를 현 회장인 홍원식 회장에게 물려줬다. 홍원식 회장은 홍 명예회장의 큰아들이다.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밀어내기 논란으로 크게 휘청였다. 대기업 갑질 사건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해당 사건은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이 섞인 폭언을 한 녹취록까지 공개되며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졌다. 이후 리베이트와 관련된 정황까지 나왔다.
당시 남양유업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많은 국민들은 ‘악덕기업 상품은 사지 않겠다’며 불매운동에 나섰고 갑질 꼬리표가 달린 상황에서 황하나씨의 마약사건, 경쟁사인 매일유업을 비방하는 댓글작업을 한 사건 등 악재가 계속되면서 이미지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여기에 2021년 자사 발효유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고 허위발표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홍 회장이 대국민사과를 했음에도 이미지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홍 회장 일가의 지분이 한앤컴퍼니로 넘어가게 된다면, 남양유업에서 홍씨 일가의 존재감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60여년간 이어져온 남양유업의 오너경영 체제가 막을 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