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남양유업 그리고 우량아 선발대회
2025-01-04 어기선 기자
우량아 선발대회
1980년대까지 우량아 선발대회가 있었다. 영양상태가 좋고 건강한 어린이들(만 2세 미만 어린이들)을 선발했으며, 매스컴에 보도되고, 표창과 상금을 수상했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시작됐다. 이는 한국전쟁 시기인 1952년 실시됐다. 그리고 50년대~60년대를 거쳤고, 1983년까지 실시됐다. 그리고 우량아 선발대회를 후원한 회사가 남양유업이다. 1971년 MBC가 주관하고 남양유업이 후원하는 제1회 전국우량아 선발대회가 1983년까지 이어왔고,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우량아 선발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남양유업이 우량아 선발대회를 후원한 것은 결국 분유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분유가 모유보다 영양적으로 우수하고,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는 것이 문화적이고 세련됐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이런 비판적 인식 때문에 우량아 선발대회는 역사속에 사라지게 됐다.연인원 2만여명 참여
13년 동안 참가한 연인원이 2만여명이 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그 당시 엄마들은 자기 아이를 튼실하게 키워 우량아 선발대회에 내보내는 것이 꿈이었다. 당시 부모들은 딸을 낳으면 미스코리아에 내보내고, 아기들은 우량아 선발대회에 내보내는 것을 가장 자랑으로 생각했다. 당시 우량아 기준은 질병이 없어야 하고, 각종 예방접종을 빠뜨리지 않아야 하고, 나이 또래에 맞게 신경 기능이 발달하고, 체중과 가슴둘레 등 신체발달과 영양상태가 좋아야 했다. 뽑힌 아이들은 올림픽 메달리스트처럼 목에 무거운 메달을 걸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남양분유 광고모델로 발탁돼 스타덤에 올랐다. 이에 우량아 선발대회 출신 유명인도 많다. 작곡가 겸 가수 주영훈씨, 바둑기사 이창호 9단, SBS 윤현진 아나운서 등이 우량아 선발대회에 출전했거나 입상했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박정희 정권의 분위기와도 맞물렸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튼튼한 아이를 미래 국가 자원으로 생각했다. 이에 제1회 대회 당시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참석해 격려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