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메이드

2025-01-05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메이드는 흔히 하녀로 불린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메이드’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상징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메이드라는 직업은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산업혁명의 산물이면서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 당시 여성의 일자리 중 제법 준수한 편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메이드에 대한 인기가 날로 높아졌다.

산업혁명 거치면서

메이드의 채용률이 가장 높은 시기는 빅토리아 시기 즉 19세기였다. 영국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식민지 경제 등으로 인해 번영을 누렸다. 이런 번영은 ‘중산층’의 상류층 진입 소원이라는 것을 남겼다. 즉, 중산층이 자신은 ‘상류층’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그에 따라 ‘메이드’가 필요했다. 즉, 집안에 집사와 하녀를 두는 것을 중산층의 가장 큰 소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스노비즘이라고 부른다. 즉, 귀족인 척 하는 것을 말한다.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일자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업혁명과 식민지로 인해 경제 성장은 이뤄냈지만 공장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고, 사회보장제도는 미비했다. 심지어 자신이 거주할 ‘집’도 없는 여성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메이드로 취업을 하는 것이 당시 여성들의 최대 소원 중 하나였다. 특히 당시 중산층은 귀족 등을 동경했기 때문에 메이드에 대한 인권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여성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을 하면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지만 메이드가 된다면 중산층 주인의 마음에만 들면 공장 노동자보다는 훨씬 근무환경이 좋았다. 다만 마음씨 좋은 중산층 주인을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서

그런 메이드 직업이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은 바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영국의 중산층이 무너지게 됐다. 중산층이 무너지게 되면서 그에 따라 메이드라는 직업이 점차 소멸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각종 생활가전제품이 발명되면서 그에 메이드라는 직업도 점차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영국인들 가슴 속에서는 빅토리아 시대를 동경하게 되면서 빅토리아 시대 당시 메이드를 고용한 중산층과 관련된 문학작품 등이 지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