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안경

2024-01-15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안경은 시력이 좋지 않은 눈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얼굴에 쓰는 물건이다. 시력교정의 기능을 가진 물건이다. 다만 패션에 중점을 둔 사치품으로도 취급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선글라스나 고글의 경우 눈을 보호하기 위한 것도 있고, 변장이나 패션 등을 위해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 안경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안경의 역사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돋보기는 고대에도 존재

볼록렌즈 돋보기는 고대에도 존재했다. 분황사 모전석탑 사리함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든 수정화주 유물이 있다. 돋보기 또는 불씨를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안경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경이 유럽에서 유입된 물건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안경의 초기 형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안경은 1286년 이탈리아 피사 살비노 다르마트와 피렌체의 수도사 알레산드로 다 스피나가 발명한 것이 최초이다. 중국에서는 안경을 처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12세기 중국에서 연기에 그을린 수정판을 만든 것을 안경을 만들었다고 잘못 알려졌다.

임진왜란 전후로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안경은 2백년 전 처음 있었던 물건”이라고 기술돼 있고, 김성일의 안경이 유물로 전해졌는데 김성일이 사망한 시점이 임지왜란 초기인 1593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580년경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이 애체(애j)라는 안경이 장차 중국으로 전해오게 될 것이고 가정에서도 반드시 갖출 것이다’라고 썼다. 여기서 ‘애체’는 안경을 부르는 말이다. 실학자 이규경은 ‘안경류’를 썼는데 “눈 밝아지는 오묘한 물건”이라고 기술했다. 임진왜란 전후로 안경이 유래됐지만 17세기 양반이나 부유층 중심으로 보급이 됐고, 19세기에는 눈 나쁜 서민들도 착용했다. 안경다리가 없기 때문에 렌트 양쪽에 끈을 달아 착용했다. 안경테의 재질에 따라 양반 또는 부유층이 사용하는 것과 서민들이 사용하는 것이 달랐다. 조선후기 넘어오면서 나이 많은 임금들은 안경을 착용했다. 그리고 선글라스도 착용했다. 다만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은 무례한 행위였기 때문에 신하는 임금 앞에서 안경을 쓸 수 없었으며, 서민들 역시 양반 앞에서 안경을 쓸 수 없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조병구가 안경을 끼고 생활했는데 헌종 앞에서 안경을 썼다고 해서 헌종이 진노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20세기 들어와서

20세기 들어와서 일제강점기에서는 안경은 ‘지식인’의 대명사로 취급됐다. 학식이 대단한 사람으로 취급됐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1990년 컴퓨터가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안경이 점차 보급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