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작가의 어설픈 제주이야기 7] 가끔은 제주 원도심 2
- 도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역사의 현장, 관덕정 - 제주 최초의 백화점과 극장이 자리했던, 칠성로 - 원도심의 시그니처 포토존, ‘그레이 d’ 벽면
[파이낸셜리뷰=김민수 여행작가] 원도심은 아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20년을 살았다.
어린 시절, 아내는 목이 늘어난 오빠의 러닝셔츠를 입는 채 제주 북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아내의 엄마, 즉 장모님은 학교 선생님이었고, 매일 계 계주였으며, 새끼 회를 파는 식당의 사장님이기도 했다. 아내는 시내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 동문시장, 관덕정, 칠성통, 산지 등을 누비며 추억을 쌓았다.
관덕정에서 16세기 제주를 만나다.
도민들에게는 관덕정은 만남의 장소로 통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지인이란 지인은 거의 만나게 되는 생활 동선의 기준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관덕정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활터가 있는 관아 건물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제주시의 관덕정은 현존 유일한 것으로 보물 322호에 지정돼있다. 관덕정은 제주 역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 중심에 있었다. 이재수의 난으로 300여 명 천주교인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의 현장이며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1947년 3.1절 집회 또한 이곳에서 일어났다. 또한, 제주 최초의 시장(제주시 민속오일장의 시작)도 1905년 관덕정에서 열렸다.
관덕정은 관광객보다는 도민들이 많이 찾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사람들은 마치 도시의 고궁처럼 경내를 거닐고 또 벤치에 앉아 사색도 한다.
이토록 잔잔한 누정에도 옛 제주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만경루 1층의 탐라순력도 체험관이다. 탐라순력도(보물 625-6호/국립제주박물관)는 1702년 제주 목사로 부임한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제주의 곳곳을 순찰한 후 남긴 채색 화첩이다. 16세기 당시의 자연과 생활풍습 등을 그래픽패널 및 영상물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의외로 재미있다. 마을, 돌담, 길을 품은 옛 제주가 한꺼번에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목사 이형상은 그가 남긴 ‘남환박물’에는 이렇게 기록돼있다. ‘섬을 둘러 있는 것은 모두 돌이다. 촉촉 궤궤한 낭떠러지가 바다에 걸쳐서 심겨 있으니 산이 아니면 바다다. 바다가 스스로 산을 뚫고 고래 같은 파도가 격렬히 뿜어대니, 눈 닿는 먼 곳까지 놀라울 뿐이다. 산에는 숲과 시내가 많은데 그윽하고 물이 맑으며 기이하고, 장엄하여 경승 아닌 데가 없다. ’
제주의 명동, 칠성로(통)을 지나 산지천으로
칠성로는 현재 제주도 도시재생 지원센터에서 북수구광장에 이르는 약 450m의 골목을 일컫는다. 칠성로는 탐라 시대 있었던 ‘칠성단’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끝에 통(通)을 붙였던 것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다. 칠성로는 제주 최초의 백화점과 극장은 물론 양복점, 귀금속점이 늘어서 제주의 명동이라 불릴 만큼 번화했었다.
80년대 브랜드 옷 가게, 고급 제과점과 커피숍,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면서 탑동 호텔가와 동문시장 등과 더불어 중심지로의 특혜를 누렸지만, 신제주의 등장과 함께 침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칠성로는 제주 최대의 상점가가 조성되면서 젊은 도민들과 관광객의 발걸음이 점차 잦아지는 추세다. 또한, 쇼핑, 문화, 역사가 어우러진 원도심의 중심 스폿으로의 역할 또한 단단히 다져가고 있다.
산지천은 한라산에서 발원해서 제주항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칠성로의 우측 끝점, 동문시장의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오래전 산지천은 제주시민의 생활용수 공급원이었고 때론 빨래터의 역할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영향으로 급속도로 오염되었고 결국 복개되기에 이른다. 이후 술집, 집창촌, 여관, 식당, 시장 등 서로 다른 삶의 북적임이 공존했던 산지천은 2002년 다시 뚜껑을 걷어내고 자연 하천으로의 모습으로 복귀했다. 또한, 각고의 노력 끝에 현재는 맑은 물이 흐르고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는 도심 공원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원도심을 힙하게 만든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 시네마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는 폐관되어 방치 중이던 탑동시네마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14년 개관했다. 호텔과 마트가 늘어선 지극히 소비적인 거리에 문화의 방점을 찍은 셈이다.
‘보존과 창조’라는 주제로 설립된 미술관에는 극장 특유의 높은 천정과 콘크리트 구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 레트로 감성이 절로 돋아난다. 영사실과 매점 등 극장의 부속실까지, 미술관의 전시 공간은 실로 다양하고 독특하다. 그리고 계단의 창문 프레임마저 탑동 바다의 도도한 풍경을 절묘하게 담았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의 크고 작은 방에는 ‘수보드 굽타’(인도), ‘장환’(중국), ‘코헤이 나와’(일본), ‘앤디 워홀’(미국), 백남준(대한민국) 등 세계적인 작가의 현대미술 작품 120여 점이 기발한 구성으로 전시돼 있다. 그러다 보니 탑동의 빈티지 공간은 여행객들의 입소문으로 퍼져나가 어느새 원도심의 핫플레이스로 떠 올랐다.
한편,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 시네마 골목의 그레이 d 벽면은 젊은 여행객들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찾아온다는 원도심의 시그니처 포토존이다.
엄마 대신 일수 수첩에 도장을 받아오고 친구들이 과자를 사 먹을 때 과일가게를 기웃거렸던 아내는 지금 내 곁에 있다. 오늘도 원도심을 걸으며 그 시절의 얘기를 한다. 아마도 100번쯤 되었을까? 난 매번 반응하고 귀를 기울인다. 오래된 그림 속에 함께 있었던 것처럼 정겹고 친근하다.
산지천이 바다로 접어드는 끝자락에 공원 하나가 나타났다. 이름하여 산짓물공원, 화원을 가득 채운 빨갛고 노란 튤립, 앞서가던 커플이 걸음을 멈추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서쪽 하늘이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전경의 일부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탑동광장으로 나서자 ‘서부두명품횟집거리’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최소 20년에서 50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노포들이다. 한때는 비싼 가격에 도민과 관광객에게 외면을 받기도 했지만, 자정 운동을 통해 다시금 명성을 찾아가는 중이다.
문득 한 잔 생각이 간절해졌고 잠시 후, 아내와 나는 횟집 2층 창가에 앉아 촉촉이 저무는 제주 원도심의 하루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