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25의 실험, 이제는 ‘맥주 3캔 9000원’…숨겨진 경제 심리

객단가만 줄이는 조삼모사 vs 1인 가구 겨냥한 묘수…엇갈린 평가 대형마트 시작으로 10년 역사의 ‘수입맥주 4캔 1만원’…이젠 안녕 1만원 심리적 저항선은 지켰다? 20년 전 ‘9900원의 매직’ 재부활

2025-01-19     박영주 기자
‘맥주 4캔에 1만원’ 시대가 저물었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고물가 상황 속 맥주단가가 올라간 탓이 크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달 28일, 편의점 GS25가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맥주 행사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며 맥주 묶음할인 행사를 4캔에서 3캔으로 바꾼다고 밝힌 것이다. 수입맥주 4캔이 1만2000원 가량에 팔리는 등 기존의 ‘4캔 1만원’ 공식이 깨진 상황에, 3캔 9000원이면 1만원 보다 싸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워 ‘1만원’이라는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선은 유지한게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사진=연합뉴스
물론 이러한 GS25의 ‘실험’에 대한 해석은 엇갈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가격변동 없이 4캔에 얼마로 불리던 것을 3캔 단위로 바꾸는 것이 어떻게 ‘패러다임’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냐는 의구심부터 “500㎖ 큰 캔 기준으로 보면 3캔에 9000원이나 4캔에 1만2000원이나 어차피 똑같은데 조삼모사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실제로 일부 점주들 사이에서는 격한 반발이 쏟아지기도 했다. 점주들이 모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객단가 떨어진다”, “결국 조삼모사인데 객단가만 줄게 생겼다”, “4캔씩 사가던 단골들이 3캔씩 사간다”, “1~2개 사는 고객이 3개 사면 매출이 상승된다는데 떨어지는 이익만 준다” 등의 반응을 찾아볼 수 있었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으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봤다.  사측 관계자는 “3캔 9000원으로 행사한다고 기존의 4캔 1만2000원 행사가 없어진게 아니다. 고객의 구매 허들 자체를 낮춘 것이라 할 수 있다”며 “과거 4캔 만원 행사할 때도 1만5000원~2만원 벌 것을 1만원 밖에 못 버는 것 아니냐는 일부 경영진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편의점 내 맥주 매출 비중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사실 효과가 입증된 행사라 봐주시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GS리테일이 밝힌 수치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수입맥주 4캔 1만원 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GS25 맥주 카테고리에서 수입맥주 매출비중은 2014년 23.8%→ 2022년 45.2%로 2배 가까이 늘었다.  1인가구 수의 증가로 인해 기존에는 대량으로 맥주를 구매하던 이들이 소량으로 구매하는 방식으로 패턴 자체가 변한 것도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 “아직 시행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상태인데 성패를 말하는 것은 다소 이르지 않나 생각한다”며 “물가가 올라가면서 기존에 1캔 또는 2캔을 구매하던 분들이 행사를 통해 3캔씩 사간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여러가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결과적으로는 편의점의 맥주 매출 볼륨을 키울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맥주 3캔 묶음할인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편의점을 주로 이용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억지로 4캔씩 살 필요 없이 3캔 구매로도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어 좋다”는 의견이 많다. 일부 점주들 중에서는 “어차피 맥주 소비량이 바뀌는건 아닐텐데, 4캔 사가는 것보다 3캔 사가면 좀더 매장을 자주 방문할테니 좋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사진=GS리테일

#10년전 ‘수입맥주 4캔에 1만원’…시작은 대형마트

취재과정에서 ‘수입맥주 4캔에 1만원’ 공식의 역사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 측에서는 2014년 수입맥주 4캔 만원 행사를 시작했다며 “편의점 4캔 할인행사로 수입맥주 트렌드를 선도했던 GS25가 이번에도 선도적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효과를 입증하면 업계에서 속속 따라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경쟁사인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측에서는 “편의점 4캔 할인행사는 CU에서 먼저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1위를 다투는 CU와 GS25가 각각 ‘내가 먼저한 것’이라고 외치지만, 사실 맥주 4캔에 1만원 행사는 편의점이 아닌 대형마트에서부터 시작됐다.  편의점에서 ‘맥주 4캔에 1만원’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4년 말~2015년 무렵, 그보다 이전인 2011년 경에는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에서 ‘수입맥주 골라담기’ 행사가 먼저 막을 올렸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비싸서 못 먹던 것이 ‘수입맥주’ 였지만, 대형마트를 시작으로 편의점까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팔리기 시작하면서 쉽게 맛볼 수 있는 맥주가 됐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편의점은 똑같은 상품을 비싸게 파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만큼, 주류 구매의 핵심 채널은 대형마트였다. 엄밀히 따지면 수입맥주 4캔 만원 행사에서 편의점은 후발주자였던 셈이다.  이후 사회적 인식 변화로 결혼해 가정을 꾸리지 않고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점차 늘어나면서 대형마트보다 편의점 채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그 결과 편의점에서 진행하는 ‘수입맥주 1만원’ 행사가 뿌리를 내리게 됐다. 

#20년전 2000년대 초 ‘9900원의 매직’

시간을 더 과거로 돌리면, GS리테일이 주목한 ‘1만원’의 저항선도 이른바 ‘9900원의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오래된 마케팅 전략으로 대형마트에서 먼저 시작됐다.  경기가 어렵고 소비심리가 위축될수록 ‘심리전’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1000원에서 10원 뺀 990원, 1만원에서 100원을 뺀 9900원 등으로 가격을 책정하면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싸다는 인식을 주게 된다. 그 결과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지갑을 열게 되고 매출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전략이다. 이것이 성행한 것은 주로 2000년대 초반이었다.  다양한 판매 채널들에서 ‘9 마케팅’을 지속하면서 모든 제품들의 끝자리가 ‘9900원’으로 맞춰졌고 아이러니하게도 가격 차이는 불과 100원밖에 나지 않는데도 1만원만 넘어가면 비싸다는 인식을 주게 됐다.  지금이야 이러한 관행이 많이 사라졌지만, 9 마케팅의 명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고물가‧고금리 상황 속 이번에 GS리테일이 시작한 ‘맥주 3캔 9000원’이라는 마케팅 전략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