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역사] 주식시장은 자본주의의 꽃
2024-01-25 김진혁
[파이낸셜리뷰] 주식시장은 기업이 자본을 조달하는 곳으로,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처음 설립됐다. 당시 유럽의 강대국들은 막대한 자본을 이용하여 인도와 중국 등의 나라와 무역을 통해 큰 이익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본이 적었던 네덜란드는 부족한 자금을 국민들로부터 투자를 받고 싶어 탄생시킨 것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이다.
국민들의 돈을 모아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 활동을 할 회사를 설립했다. 투자자들에게 받은 투자금에 대한 수익 배분을 위해 투자금에 대한 소유권을 증명하는 증서가 세계 최초의 주식이다. 선진 외국에 비해 짧은 한국 주식시장의 굵직한 사건을 살펴보자.
한반도에서 벌어진 비극으로 피란민이 몰린 부산에서는 전비 조달용으로 발행된 건국국채와 생계를 목적으로 처분되는 지가증권의 매매가 활성화됐다.
정전협정 이후 이들 4곳의 증권사와 해방 후 1호 증권사인 대한증권(현 교보증권)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고자 했다.
1953년 11월 사단법인 대한증권업협회를 설립했다. 대한민국 취초 거래소인 대한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는 1956년 2월 역사적인 설립등기를 마치고 증권사 은행 보험사들이 각각 1억 환을 출자해 자본금 3억 환의 거래소가 발촉됐다. 금융투자업계와 협회는 지난 70년 동안 숱한 위기를 극복해왔다.
1960년대 초반에는 증권파동으로 업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시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자본시장 육성을 천명하자, 자본시장의 중심인 대한증권거래소의 발행주식이 폭등했다.
개인투자자는 거래소를 장악하려는 증권사의 매점으로 한껏 부풀려진 가격의 주식을 사들였고, 이후 처참하게 꺼지는 거품을 바라보며 절망했다. 중앙정보부와 증권사가 시세조종을 했다는 의혹은 업계가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는 결정타였다.
그럼에도 기업공개 촉진 정책이 1970년대에 효과를 발휘하며 주식시장의 활기가 되살아났다. 비슷한 시기에 힘찬 태동을 시작한 투자신탁업도 시장으로부터 멀어졌던 국민의 관심을 되돌렸다.
1) 주식거래의 첫 단계, 1932년 조선취인소
조선 시대에는 주식시장이 형성되지 않았으며, 전통적인 물물교환과 선술집에서의 대주주 간 거래 등이 주요한 경제활동이었다. 1880년 유길준, 김옥균과 같은 개화파 인사들을 통해 조선에 처음 주식회사 제도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1910년대 ~ 1945년) 시기에 주식회사가 도입되었다. 주식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점차 활발해지자 경성에는 주식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거래하고자 하는 상인들의 요구가 생겨났다. 조선총독부는 1920년, ‘경성현물주식취인시장’이라는 이름의 거래소 개설을 허가했다. 이후 인천취인소와 경성취인소가 합병하여 1932년 조선취인소로 재탄생한다.
2) 초기 단계 (1950년대 – 1970년대): 1956년 증권거래소 개장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는 주식투자에 별다른 기준이 없었다. 일명 ‘책동전’으로 주식 매도세력과 매수세력이 양편으로 나누어서 돈과 물량으로 힘을 겨루었다. 기업가치와 무관한 투기적 거래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증권시장은 초기 단계로 국내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고 주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1956년에는 증권거래소법이 제정돼 증권거래소 설립되었고, 1956년 3월 3일에는 서울에 증권거래소가 개장됐다.
3) 개방과 성장 (1980년대 – 1990년대): 1992년 외국인 투자 허용
8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그래프를 투자기준으로 삼고, 개인투자자들도 PER, ROE, EV/EBITDA 같은 투자지표를 통해 투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자본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1980년대에는 외국인 투자가 허용됐다. 해외자본 유입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 증권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1992년 외국인 직접투자를 시작으로 1990년대 초반에는 증권시장의 규제가 완화됐다. 특히 선물시장과 옵션시장이 개설됐다. 1996년에는 한국 증권거래소(KRX)가 서울 증권거래소와 한국 증권 자문 등을 통합하여 설립됐다.
4) 글로벌화와 현대화 (2000년대 – 현재): 아직은 열악한 한국 주식시장 그러나 희망은 있다!
2000년대에는 정보기술의 발전과 함께 전자거래 플랫폼이 도입되어 거래 과정이 디지털화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이 증가하며, 한국 증시도 영향을 받았다.
최근 몇 년간에는 스마트폰 앱을 통한 모바일 거래가 증가하면서 투자자들의 거래방식이 다양화됐다. 한국 시장이 개선해야 할 것은 공매도 제도개선, 불법 금융 사례 강한 처벌, 기업의 상속세 감면 퇴직연금 편입 등 후진적인 제도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개인투자자들도 전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투자하기에 국내시각에만 맞출 수는 없다. 다이나믹한 우리 사회, 건전하고 선진 자본 조성 시장이 형성되면 한국경제에도 유리하다.
KOSPI와 KOSDAQ 중심으로 움직이는 fundamental보다는 거시환경의 금리, 환율 등에 더 민감한 외국인 자금에 의해 냉탕, 온탕을 오간 것이 지금의 한국 자본시장 역사이다. 아직도 MSCI 선진지수 편입이 안 된 허약한 자본시장이다.
많은 국민들의 주식투자 역사 공부가 필요하다.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에 적용하며, 미래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역사 공부는 현재 증시를 이해하고 미래 증시를 예측하기 위한 좋은 사례이다. 한국의 증권거래는 초기에는 산업화와 함께 성장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규모와 글로벌 연결성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일 것이다. 물론 시기별로 증권파동의 굴곡을 보냈다.
현재 우리나라 GDP 순위는 세계 10위이다. 2020년 주식 시가 총액 21조 달러로 세계 10위이며, 외환보유액은 2023년 9월 말 세계 9위의 선진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