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 경제리뷰] 미켈란젤로 피에타
2025-01-29 어기선 기자
고대 로마 조각처럼 보이게
미켈란젤로가 메디치 가문에서 공부를 했다. 메디치 가문은 젊은 예술가에게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자신의 저택 정원에 ‘대리석 정원’을 갖춰놓고 젊은 조각가들이 마음껏 대리석에 솜씨를 뽐내도록 했다.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 메디치 가문은 소년 미켈란젤로에게 파격적인 우대를 했다. 하지만 로렌초가 사망한 후 아들 피에로 데 메디치는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고, 이에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을 떠났다. 그러나 2년 후 메디치 가문을 방문할 일이 있었고, 잠자는 큐피드 상을 보고 있던 한 조각가가 “땅 속에서 찾은 것처럼 만들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말을 읊조리자 미켈란젤로는 똑같이 만들어 그을린 후 땅 속에 파묻었다가 파내면서 마치 ‘고대 로마 조각’처럼 보이게 했다. 이것을 골동품상에 팔았고, 골동품상은 포도밭에서 발굴된 로마 조각상이라고, 리아리오 추기경에게 팔았다. 추기경은 훗날 자신이 미켈란젤로의 위작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미켈란젤로를 찾았다. 그렇게 미켈란젤로는 로마에 입성을 한다. 그리고 리아리오 추기경은 미켈란젤로에게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를 만들어줄 것을 주문했다. 미켈란젤로의 잠자는 큐피드상은 이후 오히려 더 비싼 값에 거래가 됐다.피에타에 이름 새긴 이유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의 아름다움과 예수의 죽음을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 2m 크기이지만 당시 해부학을 파괴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오래에서 석상을 올려다 볼 때 예수의 시신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 모습이 크게 조각됐기 때문이다. 정면에 바라보는 것과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완전히 다른 느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해부학을 정면으로 위배했다. 당시 조각가들은 해부학을 공부하면서 해부학에 충실한 조각을 했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에서 이것을 완전히 깨버렸다. 피에타가 유명세를 떨쳤지만 사람들이 누가 조각을 했는지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 이에 미켈란젤로는 밤에 몰래 자신의 이름을 조각했다. 피에타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면서 오히려 피에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