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2월 6일 프랑스-미국 조약(동맹조약) 체결

2025-02-06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778년 2월 6일은 동맹조약이 체결된 날이다. 프랑스-미국 조약으로 알려졌다. 해당 조약을 체결하면서 미국 독립전쟁은 국제전쟁이 됐다. 당시 전세계 최강대국이었던 프랑스는 7년 전쟁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하게 됐고, 그러면서 동맹조약을 체결했다. 동맹조약이 체결될 당시만 해도 루이 16세는 미국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7년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자

1776년 13개 영국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당시 프랑스는 영국과의 7년 전쟁과 1763년 파리조약으로 전쟁이 종식되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벤자민 프랭클린은 프랑스에서 미국 독립전쟁에 대한 프랑스 지지를 얻는데 상당한 노력을 했다. 그 결과 토마스 제퍼슨은 프랑스와 미국 사이에 가능한 통상 조약을 위한 조건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당초에는 통상 조약 성격이 강했지만 동맹조약에는 군사 동맹 조건을 명시하고 미래의 평화 조약을 서명하기 위한 요구 사항을 설정했다.

동맹조약 이후

1778년 3월 13일 프랑스는 미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한다고 영국에 통보했다. 이에 영국은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고, 그로 인해 프랑스는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하게 됐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다는 것은 영국에는 큰 위협이었다. 동맹조약 이후 스페인은 1779년 4월 12일 영국에 대항해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프랑스와 공동 교전국 역할을 했던 네덜란드 역시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두 번째 국가가 됐다. 조약 체결 후 프랑스의 무기, 탄약, 군복의 유입은 미국으로는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영원할거 같았던 조약

1783년 파리 조약이 체결된 이후 미국인들은 더 이상 프랑스에 묶여 있는 것을 싫어했다. 이에 동맹조약의 무효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한 후 루이16세가 처형을 당하면서 조약을 무효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나왔다. 다만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프랑스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조약 무효화가 이뤄졌다. 특히 1794년 런던 조약을 체결하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이 배신자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