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작가의 어설픈 제주이야기 8] 터무늬 있는 그곳 모슬포 #1
- 다크투어리즘의 성지로 알려진 모슬포
- 건축가 승효상, “과거의 무늬에 현재의 무늬를 접목하여 후손에게 물려 주는 일”
- 대정오일장이 열리는 1, 6일 모슬포 방문 추천
2025-02-07 김민수 여행작가
[파이낸셜리뷰=김민수 여행작가] 대정읍은 제주도의 가장 서쪽 지역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퉁쳐서 모슬포라 부른다. 모슬포에서 돈을 빌리면 ‘가파도 마라도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사람들은 지역명을 풍자해 부르기를 좋아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몹쓸포’, 또 먹고살기 힘들어 ‘못살포’가 되기도 했다.
이름 따라간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모슬포의 근현대사는 참으로 억울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많은 수탈, 징발, 노동력 착취 그리고 학살을 겪었다. 그런 이유에서 알뜨르비행장, 일본군 지하벙커, 해안 동굴 진지, 예비검속 학살 터, 포로수용소 유적 등의 흔적이 있는 모슬포는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의 성지란 또 다른 부제를 얻었다.
건축가 승효상과 알뜨르비행장
건축가 승효상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제주 롯데리조트 아트빌라스의 개관 10주년 기념 프로그램에서였다. 그가 직접 도슨트가 되어 제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그의 작품들을 돌아보는 일정에 따라나선 것이다.
그가 가장 먼저 일행들을 안내한 곳 또한 알뜨르비행장이었다. 중일전쟁 당시 전투기의 중간 기착지로 건설된 알뜨르비행장은 모슬포 주민의 눈물과 한이 서려 있는 현장이다. 그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강제노역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승효상 선생은 난징대학살의 배후 거점이 되어버린 광활한 대지가 시대와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터에는 본디 무늬가 있습니다. 과거의 무늬에 현재의 무늬를 접목하여 후손에게 물려 주는 일이 건축가의 임무죠, 알뜨르비행장에 있는 19기의 격납고도 그런 의미에서 보존 가치가 있는 것이고요. “
최근 알뜨르비행장 부지에 ‘평화대공원’이 들어설 것이란 소식을 봤다. 본디 국방부 소유의 국유지를 제주도가 10년씩 무상임대 후 갱신 조건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급물살을 탄 것이다.
총 571억 규모의 사업에는 3층 규모의 전시관을 포함해 관람로, 광장 등이 조성될 계획이란다. 그러나 일부에서 알뜨르의 경관 훼손과 난개발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공원보다는 평화'라는 메시지에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한다. 변화의 순간에서, 승효상 선생이 얘기했던 터무늬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된다.
단순미의 극치 제주추사관
모슬포는 추사 김정희가 1840년부터 1848년까지 약 9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다. 2007년 김정희 적거지가 사적으로 지정된 후 2010년 제주 추사관이 지어졌다. 역시나 승효상 선생의 작품이다. 그는 처음 설계를 의뢰받았을 때, 모슬포의 작은 동네에 500평의 큼지막한 건물을 짓는 것이 꽤나 어색했단다.
20여 평의 가옥들이 옹기종기 만들어 낸 집합의 아름다움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전시실은 지하로 밀어 놓고 지상의 공간은 비워두기로 했다. 추사의 세계를 읽은 탐방객이 위로 올라와 스스로 공간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를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랬다. 추사체와 세한도라는 걸작이 만든 추사의 삶과 걸맞도록 건물도 벽과 지붕에 충실한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설계했다.
추사관의 동쪽 벽에는 동그란 창이 하나 있었다. 내부에서 보면 창 속에 소나무 한그루가 들어 있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탐방객 누구나 세한도를 연상하지만, 정작 승효상 선생은 본인의 의도가 아니라 했다. 오히려 정원에 잔디 대신 토종 억새를 심었다. 그런 이유로 지하와 지상 사이 경계의 창 너머 계절에 빛나는 제주가 펼쳐지곤 한다.
대정오일장이 열리는 날, 신선하고 건강한 꼬마김밥 덕분에 넉넉한 포만감까지
모슬포에 갈때는 되도록 1, 6일에 맞춰간다. 대정오일장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일장은 나들이 코스로도 그만이다. 저렴한 지출로 눈과 입이 호강하는 알뜰함을 갖췄다. 대정오일장은 제주 서부지역에서는 제일 큰 시장이다. 규모로 보면 제주시오일장, 서귀포오일장 다음쯤 된다.
대정오일장은 시작은 6·25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육지를 떠나온 피난민 수는 15만 명에 이르렀다. 교통이 불편한 제주도에서 오일장은 피난민들과 현지 주민에겐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구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기회였다. 장이 열리는 날이면 인산인해를 이뤘고 가축의 거래까지 이어져 모슬포 전역이 난리 통을 이뤘다. 대정오일장 이후 몇 번의 자리 이동 끝에 1983년, 모슬포항에 자리를 틀었다.
대정오일장에 갈 때마다 들리는 곳이 있다. 자매식장이다. 이곳의 자랑은 무려 12가지 맛을 자랑하는 꼬마김밥이다. 김밥은 맛살, 어묵, 오징어포, 참치, 돈가스, 너비아니, 햄, 고기, 야채, 땡초 등 메인재료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는 점도 좋지만, 광장시장의 마약김밥이 부럽지 않을 만큼 맛이 좋다.
식당의 안쪽 주방에서는 아주머니 두 분이 부지런히 김밥을 말아낸다. 능숙한 솜씨다. 꼬마김밥은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데다 재료의 순환이 빨라 신선하고 건강하다.
대정오일장에는 간식거리도 많다. 꽈배기와 도넛은 물론이고 꼬치와 튀김이라도 먹으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그중에서도 삶은 돼지머리와 내장을 파는 매대 앞에서는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귀, 허파, 간, 껍질, 순대의 자태가 매혹적이다. 한 팩에 5,000원, 두 팩을 사면 3,000원어치를 서비스로 준다.
시장 내에는 300여 개의 점포가 있다. 옷가게, 신발가게, 기름집, 잡화점 등 재래시장의 라인업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특히 그중에는 수산물 가게가 압도적으로 많다. 길게 이어진 매대는 마치 공동판매장 같은 느낌마저 든다. 생물 생선값은 제주의 오일장 중에서 가장 싸다고 한다.
모슬포항이 지척이고 항구를 드나드는 어선만도 수십 척이 넘으니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생물 생선이 끝나면 건어물 차례다. 길이 50cm 정도 되는 길쭉한 어포는 갈치포다. 갈치포는 간장과 함께 조리거나 기름에 살짝 튀기면 맥주 안주로 그만이란다. 한 무더기에 10,000원이다.
대정오일장을 나올 때 손에는 튀김과 찹쌀도넛, 머릿고기, 갈치포 봉지가 들려져 있었다. 한잔하기 딱 좋은 안주들이다. 막걸리로 시작한 술자리가 소주를 거쳐 맥주까지 이어졌다.
머릿고기는 어찌나 양이 많은지 한참을 먹고도 반이나 남았다. 배는 터져버릴 듯 불러왔지만 갈치포를 두고 예서 말수는 없었다. 들기름에 살짝 튀겨 구운 갈치포가 침샘을 자극해온다. 맥주를 연거푸 들이켜게 했던 그 맛의 정체를 알았다.
‘미묘한 비린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