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근친혼

2025-02-28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현재 ‘8촌 이내 혈족, 6촌 이내 인척’으로 규정된 근친혼 제한 관련 법률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4촌 이내 혈족과 직계 인척에 대해서만 결혼을 금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27일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가족 간 혼인을 금지하는 법률을 개정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헌법재판소가 2022년 ‘8촌 이내 혼인을 무효로 한다’는 민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아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에 따른 조치다.

근친혼 국가 신라·고려

우리나라는 근친혼 국가에서 출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고려시대까지 왕족 사이에 근친혼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에는 근친혼이 횡행했다. 신라는 골품제 국가였기 때문에 ‘성골’끼리 근친혼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여성으로서 임금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성골 남성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진덕여왕을 끝으로 성골 혈통이 맥이 끊기면서 태종 무열왕(김춘추)부터 진골 혈통이 왕위에 올랐다. 고려 역시 신라 왕실의 족내혼 풍습을 충실히 계승했다. 왕건이 전국 각 지방호족들과 결혼 동맹을 너무 많이 맺어 부인들이 만힝 맞이하면서 왕족이 넘쳐나게 됐다. 이에 왕족들의 수를 더 이상 늘리지 않게 하기 위해 왕자와 공주 간의 근친혼을 적극 장려했다.

남녀균등 상속제

근친혼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려시대까지 남녀균등 상속제 때문이다. 여기서 상속이라고 하면 재산뿐만 아니라 왕위 계승권도 포함돼 있다. 고려시대까지 공주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돼서 아들이 태어나면 왕씨 성을 받을 수 있고, 왕위 계승권을 획득한다. 실제로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결혼으로 아들이 생기자 김치양이 아들을 왕위에 올리게 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니 근친혼이 성행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고려시대는 공주가 왕족이 아닌 남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2건밖에 없었다. 그나마 왕이 족외혼을 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 고려 현종 때부터이다. 김은부의 딸들과 결혼을 하면서 ‘왕씨’가 아닌 다른 성씨의 부인들을 얻게 됐다. 그로 인해 문벌귀족이 탄생하게 됐다. 고려 후기인 원 간섭기에는 고려 왕세자가 몽골 공주와 결혼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근친혼이 점차 멀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시대부터

고려 후기부터 성리학 영향이 퍼지면서 족내혼이 금지됐다. 하지만 본관은 다른데 성(姓)이 같은 동성이본도 금혼령이 내려졌다. 조선시대에는 근친혼이 금해질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성리학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녀균등 상속’에서 ‘장자상속’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즉, 장남이 상속을 받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굳이 같은 혈통끼리 결혼을 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2007년 민법 개정 당시 호주제 폐지 논란이 불거졌을 때 근친혼 염려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8촌 이내 관계라도 혼인하고 부부로서 인정받는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