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2월 29일 콜럼버스, 월식 이용해 자메이카 원주민 굴복
2025-02-28 어기선 기자
자메이카 표류
콜럼버스는 이사벨 1세의 지원을 받아 1492년 8월 3일 1차 원정을 떠났다. 그해 10월 12일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도착한 후 10여년간 네 차례 항해를 했다. 콜럼버스는 1503년 6월 25일 자메이카 북부 해안에서 좌초했다. 원주민들은 처음에는 콜럼버스 일행에게 음식과 잠자리 등을 제공했다. 하지만 체류기간이 이듬해로 이어지면서 원주민들과 선원들의 갈등이 깊어졌고, 인명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원주민들은 지원을 끊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주요 천문 현상이 기록된 월력(月曆)을 살폈고, 월력에는 1504년 2월 29일 밤 개기월식이 일어난다고 적혀 있었다. 콜럼버스는 2월 26일 원주민 추장에게 “사흘 뒤 기독교 신이 노해서 보름달의 빛을 지우고 분노로 불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날 개기월식이 일어나 보름달이 검붉게 물들었고, 원주민들은 기독교 신을 달래기 위해 6월 29일 구조선 히스파뇰라호(號)가 오기 전까지 콜럼버스 일행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학살자 콜럼버스
사실 콜럼버스는 학살자 이미지가 강하다. 그것은 2차 원정 때부터 탐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사벨라 여왕에게 원정을 하면 수많은 노예와 금을 얻을 수 있다고 설득했기 때문이다. 이에 2차 원정 때부터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원주민을 죽이거나 금 등 귀금속을 빼앗았다. 2차 원정은 3차 원정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고, 3차 원정은 4차 원정에 비하면 덜 잔인했다. 원주민이 금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이 잘리기도 했고, 9살 소녀부터 35세 여성들은 매춘부가 됐다. 오죽하면 선원들이 콜럼버스의 잔혹성에 대해 스페인 본국에 보고를 하면서 만류해달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콜럼버스가 이처럼 원주민에게 잔인한 이유는 스페인 본국에게 자신이 발견한 지역은 황금이 넘치는 땅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지역은 신대륙은 딱히 막대한 금이나 은이 없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금과 은을 더 모으기 위해서는 원주민을 핍박해야 했고, 그리고 원주민들을 노예 등으로 팔아넘기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