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대한독립선언서

2025-03-04     어기선 기자
조소앙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행정안전부가 3.1운동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카드뉴스 형식으로 배포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자 행안부가 공식 사과하고 실수했다고 해명했다. 행안부는 SNS에 카드뉴스를 올렸는데 3.1 운동은 만주 하얼빈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선언과 동시에 만주, 한국, 일본 등에서 일어난 대규모 항일 독립운동이라고 소개했다. 이같은 소개글이 올라오자 비판이 이어졌다. 하얼빈은 19.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의거가 있는 곳으로 임시정부와 무관하다. 역사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행안부는 “앞으로 철저한 검수를 통해 유사한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 깊게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3.1운동의 모태가 된 대한독립선언서

3.1운동의 모태가 된 것은 대한독립선언서이다. 흔히 무오독립선언서로 불린다. 1919년 2월 1일 만주 길림성에서 선포한 선언서이다. 무오독립선언서라고 부른 것은 1918년 음력 11월이기 때문이다. 조소앙이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해외로 망명했던 독립운동가 39명이 참여했다. 대한독립선언서에는 ‘한국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이자 민주의 자립국’이라고 선포했고, 독립은 원한이 아닌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주장했으며, 육탄혈전에 의한 독립 완성을 내세웠다. 대한독립선언서는 기미독립선언서(3.1 독립선언서)보다 이전 시기에 작성된 최초의 독립선언서이지만 기미독립선언서보다 덜 알려졌다. 다만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된지 1주일 뒤 일본 유학생들이 주도한 2.8 독립선언과 3.1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임시정부 주도하면서 무장독립 투쟁

이들은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으며 대한독립 임시정부를 주도했다. 이들은 무장독립투쟁을 내세웠고, 임시정부도 무장독립 투쟁 노선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이 외교독립론을 내세우면서 노선 투쟁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임시정부를 와해시키게 만들었으며, 결국 김구 주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면서 힘겨운 독립운동을 이어가게 했다. 대한독립선언서에 참여한 인물들은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했던 조소앙을 포함해 김교헌, 김규식, 김동삼, 김약연, 김좌진, 김학만, 문창범, 박찬익, 박용만, 박은식, 신규식, 신채호, 유동열, 이광, 이대위, 이동녕, 이동휘, 이승만, 이시영, 이세영, 정재관 등 39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