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고려거란전쟁 귀주대첩 그 이후 외교관계

2025-03-11     어기선 기자
KBS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지난 10일 최종회로 막을 내렸다. 거란의 맹렬한 공격 속에 고려가 역사에 남을 승리를 쟁취했다. 시청률은 13.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마지막까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이날 고려 검차진의 활약과 김종현이 이끄는 1만 중갑기병의 등장 그리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귀주대첩의 승리를 이끌어 냈다는 것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아울러 송나라로부터 거란을 함께 공격하자는 제안을 받은 현종은 강감찬의 조언대로 명분과 실리를 챙기기로 했다. 이에 거란주에 화의를 청하고, 자신을 고려의 군주로 책봉해달라고 했다.

귀주대첩에서 승리를 했는데도

귀주대첩에서 거란군 10만을 격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종은 여전히 거란으로부터 책봉을 받는 형식을 취했다. 그것은 실리를 챙기는 것이었다. 고려가 승리를 했다고 해도 고려 입장에서 국력을 모두 쏟아부은 승리였다. 반면 거란은 침략국이었기 때문에 여분의 병력을 본국에 남기고 온 상황이었다. 귀주대첩 이후 곧바로 고려를 침공할 수는 없었겠지만 곧바로 회복해서 충분히 재침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즉, 고려가 거란에 비해 군사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고려 현종으로서는 책봉이라는 것을 통해 실리를 챙겼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고려 현종이 승리에 취해 ‘칭제건원’을 표방했다면 거란의 끊임없는 침공을 피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방영토 확보

다만 귀주대첩을 통해 북방영토를 확보했다. 1차 거란 침공 당시 서희의 담판을 통해 강동6주를 확보했지만 3차 침공까지 거란은 강동6주를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흥화진을 계속해서 달라고 요구를 했다. 하지만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면서 거란은 강동6주를 완전히 포기하게 됐다. 그것은 북방영토를 완전히 고려의 땅으로 만든 것이었다. 무엇보다 여진 등 북방민족 역시 고려에 복속하거나 귀의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동안 북방의 패자는 거란이라고 생각했지만 고려가 거란을 물리침으로써 북방민족들 입장에서 고려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고려-송나라-거란, 삼각 외교로

귀주대첩에서 고려가 승리를 하면서 고려-송나라-거란의 삼각외교가 형성됐다. 북송이나 거란 모두 힘의 균형이 이뤄진 속에서 고려의 위상이 커졌다. 북송도 고려의 힘이 필요했고, 거란도 고려의 힘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다원적 세계질서가 잡혀졌다. 북송과 거란의 군사적 우위가 비등해지면서 그에 따라 고려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특히 송나라와 고려의 관계는 거의 뒤집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고려와 송나라는 거란에 의해 육로는 끊겨 있다. 바다로 오갈 수밖에 없엇다. 송나라로서는 고려와의 관계가 반드시 필요했고, 이에 외교의 주도권은 항상 고려가 갖고 있었다. 송나라로서는 고려와의 관계 주도권을 가질 힘과 명분이 없었다. 이에 송나라는 고려와의 외교에 상당한 신경을 썼고, 그것은 송나라 백성들에게는 상당한 고역이었다. 왜냐하면 고려 사신에 바칠 공물을 송나라 백성들이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