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OCI 통합, 물거품 될까…캐스팅보트 국민연금의 선택은?

故임성기 회장의 후배 신동국 회장, 모녀 아닌 형제 편에 섰다 계속된 여론전, 주총 3일 앞두고 임종윤‧임종훈 해임…‘악수’일까 한미 사우회 통합 찬성이라지만, 내부에선 직원 불만 “동의 안 받아”

2024-03-25     박영주 기자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한미약품-OCI 그룹 통합을 둘러싼 모녀‧형제 갈등이 날로 거세지는 가운데, 개인 최대주주 신동국 회장이 형제의 편에 서면서 통합에 적신호가 켜졌다. 특히 신동국 회장은 한미약품 창업주인 故임성기 회장의 고교 후배인데다가, 한미사이언스 지분 12.15%를 보유하고 있어 ‘캐스팅보트’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랬던 신 회장이 통합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면서 임종윤‧임종훈 형제에 힘을 실어주자, 분위기가 급변하는 모습이다.  물론 모녀 쪽인 한미사이언스 측에서는 통합 관련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점에 대해 신 회장에 사과하면서도 글로벌 한미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보도자료 말미에는 ‘제약강국을 위한 혁신경영’이라는 故임성기 회장의 필체를 첨부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오는 28일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 호텔에서 열리는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7.66%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만일 국민연금이 모녀 편에 선다면 소액주주들의 표심까지 봐야하기 때문에 막판까지 치열한 표 대결을 하게 되지만, 형제의 편에 선다면 한미약품-OCI 그룹 통합은 물거품이 된다.
한미약품

12.15% 지분 보유한 신동국 회장, 형제 편 들었다
국민연금 확보해도, 주주총회 표 대결서 모녀 불리해
화성으로 옮긴 주총장, 오히려 모녀에게 악재로 작용?

현재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지난 1월 기준 창업주 故임성기 회장의 아내인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11.66%)과 딸인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10.2%)이 도합 21.86%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직계가족과 친인척 지분과 가현문화재단(4.9%) 및 임성기재단(3%) 지분 등을 포함하면 ‘35%’다.  임종윤 사장(9.91%)과 임종훈 사장(10.56%)의 지분율은 도합 20.47%, 여기에 배우자·자녀 지분과 임종윤 사장이 최대주주인 바이오기업 디엑스앤브이엑스(DXVX)의 지분을 더하면 28.42%에 달한다.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가 사실상 표 대결 양상으로 번지면서, 한미약품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의 고향 후배이자 고교 후배인 신동국 한양정밀화학 회장(12.15%)과 국민연금(7.66%)의 표심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그동안 중립 의견을 유지해온 신동국 회장이 23일 돌연 입장문을 통해 형제 쪽에 힘을 실어준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신 회장은 “임종윤·종훈 형제가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해 회사를 빠르게 안정시키는 동시에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 및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후속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녀 측이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선대 회장님의 뜻에 따라 설립된 재단들이 일부 대주주들에 의해 개인 회사처럼 의사결정에 활용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선대회장의 작고 이후 가족들이 합심해 회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을 기대했지만, 일부 대주주들이 상속세 등 개인적인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비즈니스 연관성이 낮은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냈다.  임종윤‧임종훈 형제 측 지분 28.42%에 신 회장의 지분 12.15%가 더해지면서 이들의 전체 지분은 40.57%로 껑충 올라서게 됐다. 모녀 측이 가현문화재단‧임성기재단까지 동원해 모은 35% 보다 무려 5%p나 높은 상황이다.  남은 것은 지분 7.66%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의 선택이다. 국민연금의 행보에 따라 두가지의 시나리오를 추정해볼 수 있다.  먼저 국민연금이 모녀 편에 선다면 35%에 7.66%를 더해 ‘42.66%’로 올라서지만 형제 측의 40.57%와의 지분격차는 2.09%p 밖에 되지 않는다. 만일 소액주주 등 기타주주들(16.77%)이 형제 편에 선다면 패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기 때문에 막판까지 표 대결을 벌여야 한다.  반대로 국민연금이 형제의 편에 선다면 무려 48.23%의 지분으로 사실상 형제의 승리가 확정된다. 그렇게 된다면 모녀가 추진하려던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은 물거품이 된다.  어떤 시나리오라도 결국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가 서울이 아닌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라비돌호텔에서 개최된다는 점 또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임종윤‧임종훈 형제는 “상장 이후 최초로 서울에서 2시간 이상 소요되는 법인소재지 근처 외부시설에서 주총을 개최하는 저의가 궁금하다”며 통합에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이 표 대결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장소를 옮긴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한미사이언스 측은 형제가 절차적 정당성을 반복적으로 문제 삼는 상황에서 상법 제364조에 근거해 ‘본점 소재지’인 경기도 화성시 팔탄공장 인근으로 장소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근로자들의 근무시간을 고려하면 팔탄공장 식당을 활용하긴 어려워서 부득이하게 인근 호텔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액주주 표심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서울이 아닌 화성시에서 주주총회를 열겠다는 선택은 한미-OCI 통합을 추진하는 모녀에게 악재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사진=한미약품그룹

모녀, 여론전에 총력…연일 보도자료 쏟아내는 한미약품
계속된 여론전, 주총 3일 앞두고 임종윤‧임종훈 해임…‘악수’일까
한미 사우회 통합 찬성이라지만, 내부에선 직원 불만 “동의 안 받아”

신 회장이 형제의 손을 들어준 이후, 한미사이언스 측에서는 형제를 견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 여론전을 펴고 있다. 당장 24일과 25일 사이 언론에 배포된 보도자료만 6건에 달한다. 한미약품에서는 서스틴베스트와 글래스루이스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최종적으로 한미사이언스 이사진 후보 주총 안건에 모두 찬성하고 임종윤 측 주주제안에는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는 내용을 공유했다.  또한 한미 사우회, 한미그룹 본부장 4명과 한미그룹 계열사 대표 5명이 한미-OCI 통합에 적극 찬성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손쉬운 승리를 기대했던 모녀 측이 예상과는 달리 임종윤‧임종훈 형제가 손을 잡고 나아가 임성기 회장의 막역한 후배인 신동국 회장까지 설득에 성공하면서, 상당히 조급해졌다고 보고 있다. 당장 한미 사우회가 공식적으로 한미-OCI 통합에 찬성했다는 보도자료 내용과 관련해서도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동의를 받지 않았다”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당장 임원들이 앞장서서 의결권 위임을 독려하는 상황에 직원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서스틴베스트‧글래스루이스 등은 모녀 측 입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KCGS와 한국ESG평가원이 형제 측의 주주제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도 변수다. 국민연금으로서도 KCGS와 한국ESG평가원의 입장을 배제하긴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양측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은 돌연 “OCI와 통합이 마무리되면 OCI홀딩스에 요구해 향후 3년간 한미사이언스의 주요 대주주 주식을 처분없이 예탁하겠다”며 임종윤‧임종훈에게도 3년간 지분 보호예수를 약속해달라는 요청을 내놓기도 했다.  임 사장은 “현실적인 상속세 문제를 타개하면서도 한미그룹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식으로 OCI와 통합을 선택한 것인데, 오빠와 동생은 가처분 의견서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듯 지분에 경영권 프리미엄 더해 매각할 생각만 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임종윤 사장 측은 “주식을 한번도 팔 생각을 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 어떤 매도 계획이 없다”며 “합병 확신이 흔들려 마음이 조급해진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공세를 이어갔다.  여기에 더해 모녀 측은 최후의 수단으로 주주총회를 3일 앞둔 25일 돌연 한미사이언스 임종윤 사장과 한미약품 임종훈 사장을 해임한다는 결정을 내놓기도 했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중요 결의 사항에 대해 분쟁을 초래하고 회사에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야기했으며 회사의 명예나 신용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지속했다는 이유였는데, 사장직에서 해임하더라도 주주총회에서 지분 행사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소액주주들의 반감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